경차보다 작으면서 1인 또는 2인이 탈 수 있는 초소형 전기차.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동수단이다. 친환경차인 데다 가정용 220V로도 충전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주차난을 겪는 도시에 산다면 더욱 매력적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사야 할지’ 묻는다면 걸리는 게 적지 않다. 초소형 전기차는 자동차 전용도로와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못한다. 아직은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기에 초소형 전기차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빛도 부담이다.
이마트에서 살 수 있는 전기차로 알려진 초소형 전기차 D2를 타고 경기 과천과 안양 그리고 서울 강남 일대를 돌아봤다. D2는 중국업체 즈더우가 만든 전기차로 유럽과 중국에서는 대중화된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장비 및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쎄미시스코가 들여와 올해 1월부터 판매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여 대가 팔렸다.
○ 도심 주행 문제없는 알뜰 전기차
지난달 말 쎄미시스코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매헌로 하이브랜드 주차장. D2를 빌린 기자는 지하 주차장 벽에 붙은 220V 콘센트에 충전케이블을 꽂아 충전이 되는지 확인했다. 주차장 내에서 수시로 충전할 수 있도록 허가 받은 곳이었다. 여기서 충전되면 가정에서 쓰는 콘센트에 멀티탭을 연결하는 식으로도 충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쎄미시스코에 따르면 가정용 콘센트로 6시간이면 배터리 완충 용량의 90%까지 충전이 된다.
주행을 시작한 후 가장 적응이 안 된 것은 기어가 주행 상태인 ‘D’에 있어도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타는 범퍼카와 같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들리는 ‘웅’ 하는 소리도 범퍼카와 비슷했다. 차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차는 경사가 낮은 오르막이라도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뒤로 밀리게 돼 있다. 따라서 차가 정차 상태가 되면 운전대 앞 계기판에는 ‘주차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메시지가 뜬다. 처음에는 초소형 차라서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김지훈 쎄미시스코 영업본부 과장은 “차가 한 번 충전된 뒤 최대한 오랜 시간 움직일 수 있도록 설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가 주행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 차가 움직이게 했다는 것이다. 운전자가 수시로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는 습관만 들이면 실제 사용하는 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초소형 전기차의 최대 속도는 시속 80km이다. 실제로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는 시속 90km 가까이 표시됐다. 속도를 낼 때도 기존 경차나 소형차와 비교했을 때 흔들림이 크지 않았다. 다른 차에 비해 차선 변경이 쉬운 건 장점이었다. 차체가 작은 게 첫째 이유였고 방향지시등을 켜면 옆 차선 차들이 기다려 준다는 느낌도 몇 번 받았다. 얼리 어답터에 대한 존중의 의미였을까. 괜히 부딪히면 뭔가 크게 망가질 것처럼 보여서였을까.
사실 D2 같은 초소형 전기차를 타고 도로로 나서면 감내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강남 일대에서는 더욱 그랬다. 차가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멈춰서 있을 때면 신기한 듯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옆 버스에서는 운전사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차를 쳐다보기도 했고 버스 탑승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초소형 전기차가 아직 낯선 까닭이다. D2 이외에 국내에 들어온 초소형 전기차 중 가장 유명한 르노삼성자동차의 트위지는 지난해 691대가 판매됐다. 도로에서 초소형 전기차를 만나는 게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니다. 1년 전 이탈리아 로마를 찾았을 때는 한국과 사뭇 달랐다. 도로를 오가는 차 10대 중 두세 대는 초소형 전기차였다. 출퇴근 시간이 되자 초소형 전기차는 더욱 많이 눈에 띄었다.
○ 대중화 위해선 ‘성숙된 교통 문화’ 과제
서울은 로마보다 도시 규모가 훨씬 크고 교통 체증도 극심한 만큼 초소형 전기차가 활용되기에 적합하다. 너도 나도 초소형 전기차를 탄다면 신기한 듯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 것이다.
과제도 여전하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안으로 초소형 전기차에 대한 기준을 확정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령안’과 안전기준 공표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초소형 전기차 기준이 마련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는 해외에서 안전 성능 기준을 충족한 초소형 전기차에 한해 판매를 허용하는 특례 조항을 통해 판매가 이뤄졌다. 현재까지 팔린 초소형 전기차는 실제 등록은 ‘경차’로 돼 있다. 신설된 초소형 전기차 기준에 따르면 초소형 전기차는 최대 속도가 시속 80km를 넘을 수 없다. 이에 경찰 측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초소형 전기차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한강 다리는 건널 수 있지만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는 달리지 못한다. 당연히 고속도로도 달릴 수 없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진입하지 못하는 규칙이 내비게이션에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주행에서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고속화도로를 타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일반 도로를 찾느라 같은 길을 두세 번 돌기도 했다. 당장은 내비게이션에 ‘일반도로로만 안내’ 같은 옵션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소형 전기차 업체들은 대중화를 위해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과 정부 측에서는 저속으로 달리는 초소형 전기차가 도로의 흐름을 방해해 다른 자동차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동차전용도로 진입을 위해 허용 속도를 높이려면 차체도 커져야 하는데, 이 경우 경차와 기준이 비슷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독일처럼 자동차전용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추월은 무조건 1차로를 통해서 한다는 원칙을 운전자들이 지킨다면 초소형 전기차의 진입 허용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성숙된 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신기술이 그렇듯 기술 발전은 사회 문화 수준의 향상이 뒷받침될 때 더욱 유용해진다. 초소형 전기차가 대중화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도로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사업 기회들도 눈앞을 지나갔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초소형 전기차 충전과 커피를 결합한 상품을 팔면 어떨까 싶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들이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해 고객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것과 비슷한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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