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39.3도… 車보닛 위 대패삼겹살, 1시간 지나자 ‘바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6일 03시 00분


올여름 최고 40.3도 기록… 영천 신녕면 더위 체험해보니



쏟아지는 햇볕에 노출된 팔은 누군가 잡아 비트는 것처럼 따가웠다. 폭염 제철을 만난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 탓에 옆 사람과 대화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24일 올여름 비공식 최고기온인 40.3도를 기록한 경북 영천시 신녕면은 25일에도 오후 2시 14분 39.3도를 나타내 경남 창녕군(오후 3시 13분)과 함께 이날 전국 최고기온을 찍었다.

○ 65분 만에 바싹 익은 삼겹살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하기 위해 취재팀은 오후 2시경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된 신녕초등학교 운동장의 한구석에 간이 태양열 조리기(햇볕을 은박지 한곳에 집중시켜 용기 속 음식을 가열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그 안에 생라면을 담은 양은냄비와 날계란을 각각 넣었다. 취재차량의 보닛(후드) 위엔 랩을 깔고 냉동 대패삼겹살과 차돌박이를 올렸다. 햇볕으로 달궈진 보닛의 온도는 무려 70도였다.

20분이 흘렀을 때 타이머 대용으로 보닛에 올려둔 휴대전화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기기의 온도가 높아 실행 중인 앱을 종료합니다’란 메시지가 떴다. 황급히 휴대전화를 옮겼다. 목이 타 그늘에 둔 물컵을 흔들어 보니 30분 전만 해도 가득했던 얼음이 다 녹아 없어졌다.

1시간이 흐른 오후 3시경 태양열 조리기가 바람에 쓰러져 양은냄비가 엎어졌을 때 라면 면발은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물이 끓지는 않았지만 면을 삶을 정도로 냄비가 달궈져 있었다는 얘기다. 오후 3시 5분경 삼겹살과 차돌박이가 프라이팬에서 구운 베이컨처럼 바삭하게 변했다. 65분 만에 아무런 가열기기 없이 햇볕만으로 고기가 익은 것이다. 옆에 올려둔 젤리는 녹아서 원래 모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차렐라 치즈는 갓 화덕에서 꺼낸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1시간이 더 흐른 뒤 계란 껍데기를 깨 보니 계란은 반숙이 돼 있었다.

○ “구십 평생 이런 더위 처음”

오후 4시경 신녕면 부녀 경로회관을 찾았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모인 할머니 9명 중 4명이 찬물을 담은 물통을 벤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통 베개’는 열이 오르는 목과 얼굴을 식히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한 할머니가 경로회관 미닫이문을 꼭 닫지 않자 다른 할머니가 “문! 문!”이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바깥 열기가 밀려들 수 있어서다.

신녕면 주민 3970명(주민등록 기준) 중 38.2%인 1516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초고령사회의 기준인 노인 인구 비율 20%를 훌쩍 뛰어넘는다. 신녕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80, 90대 어르신들은 “평생 이렇게 독한 더위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호수 할아버지(91)는 “숨이 턱 막힌다. 이러다 노인들이 큰일을 치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녕초교 전교생 84명 중 운동장에 나와 있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폭염경보가 발효돼 체육수업 등 야외 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현관이나 계단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다. 정호엽 신녕초교 교감은 “자칫 학생들이 열사병에 걸릴까 봐 최근 교실 온도를 권고 기준(26∼28도)보다 낮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은 울상이었다. 신녕공설시장에서 보리밥을 파는 류경숙 씨(59·여)는 “날이 더워 오늘 손님을 2명밖에 못 받았다”며 “에어컨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어 한 달 정도 식당 문을 닫을 생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시장엔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반면 주민센터 인근 중형마트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두 손 가득 든 손님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 대프리카 열기 흘러와 갇히는 ‘더위 저수지’

신녕면은 남서쪽으로 팔공산(해발 1193m), 북쪽으로 보현산(1124m)과 아미산(737m)에 둘러싸인 협곡 지형이다. 그 너머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있다.

산에 파묻힌 지형은 신녕면을 대한민국 최고 ‘핫(Hot) 플레이스’로 만든 주요 원인이다. 호남지방에서 달궈진 남서풍은 산을 넘어오면서 더 뜨거워져 이곳에 이른다. 남동쪽 방향엔 유일하게 산이 없지만 이곳은 숨구멍이 아니다. 오히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뜨거운 공기가 협곡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입구다. 영천시와 함께 최고기온 전국 상위권인 경산시도 그 길목에 있다. 신녕면은 사방에서 모인 열기가 그대로 갇히는 ‘더위 저수지’인 셈이다.

전재목 대구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은 “이대로라면 경북 지역에서 올여름 최고기온 기록(40.3도)을 경신할 수 있다”며 “노인과 어린이 등 폭염 취약 대상은 열사병 등 온열 질환과 일광화상을 피하려면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영천=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더위#폭염#신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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