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 한복 차림에 갓을 쓴 소리꾼이 폭풍 비트박스를 쏟아내자 노천극장으로 150명 넘는 관객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국악 장단과 힙합 댄스가 어우러진 ‘이상한 나라의 흥부’ 뮤지컬 공연에 세 살배기 어린아이부터 서양인 노부부까지 어깨를 들썩였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영상을 찍는 관객도 있었다.
무대의 주인공은 민속촌의 ‘캐릭터’들. “살아 숨쉬는 민속촌을 만들자”는 취지로 2013년 첫선을 보여 이제는 민속촌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됐다. 조선 시대 인물로 ‘빙의’해 민속촌 분위기를 살리는 게 이들의 임무다. 관람객들은 이들의 말재간에 넘어가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살짝 맞거나 흙바닥에 물로 그림을 그리는 ‘그림 도깨비’의 재주에 빠져들기도 한다.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조선동화실록’ 축제 기간에 캐릭터들은 동화 속 등장인물로 활약한다.
“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랍니다. 혹시 오시는 길에 나무꾼 못 보셨소? 제가 찾아 헤매던 나무꾼이 바로 당신인가요∼?”(용감한 선녀)
“에헤… 또 시작이구먼. 저 선녀, 실은 5000년째 ‘모태 솔로’라네. 난 내기를 좋아하는 도깨비, 전생엔 장사꾼이었다지. 자네 나랑 야바위 한 판 하지 않겠는가?”(이야기 도깨비)
캐릭터들은 고요하던 민속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들의 활약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알려지면서 2016년 관람객 수는 2011년에 비해 35% 늘었고, 2049 연령대의 관람객 비중도 40%에서 85%로 높아졌다.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하는 열혈 팬도 생겼을 정도. 그림 도깨비, 변사또 등 터줏대감 캐릭터들은 어엿한 유튜브 스타가 됐다.
“부모님 말씀 안 듣고 여자친구 속 썩이는 못된 관람객 혼내주는 게 내 일인데, 요즘은 사인 받으려고 줄을 선 관람객들 때문에 도통 곤장 칠 시간이 안 나. 20일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온 팬도 있다네. 엣헴!”(변사또)
“내가 이방으로 일할 적에 오래 지켜봐서 잘 아는데, 저 사또 공부 정말 못한다오. 양반이면 다야? 자기나 잘할 것이지. 쳇!”(흥부)
캐릭터는 매년 3월 ‘조선 스타’라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20 대 1에 이른다. 넘치는 끼와 흥을 가진 이들이 몰려드는 오디션 자체도 SNS에서 수십만 조회수를 올리곤 한다. 한국민속촌 남승현 마케팅팀장은 “민속 퍼레이드, 국악 비보이 공연 등 다양한 새 볼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더 젊고 활기찬 민속촌을 만들되 전통 보전과 교육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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