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990년대 문단 트로이카… 신경숙-공지영-은희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5일 03시 00분


[그때 그 베스트셀러]

조해진 소설가
조해진 소설가
1990년대부터 세상이 소설에 기대한 이야기는 개인이었다. 이념이라는 좌표가 희미해지면서 좌표를 만들어야 했고 비로소 도덕이 아니라 윤리를 사유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신경숙과 공지영 그리고 은희경은 이 시대적 요구가 팽배해 있을 때 문단에 나왔고 비슷한 시기에 출세작을 출간했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1993년)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년) 그리고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년)이다.

창작자에게 이른 성공은 때때로 압박감으로 작용해 뜻하지 않은 공백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문단의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던 이 세 작가는 출세작 이후에도 열정적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출간 때마다 독자들에게 새롭게 사랑받았다.

1990년대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공지영의 ‘고등어’(1994년)와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1999년)는 후일담 소설이되 신념을 내세우거나 과거를 미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 시대의 소설과 차별을 둔다. 바로 이 차별점이 1990년대의 소설적 윤리였으리라.

역사라는 무대에서 여성 인물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서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평범한 약대생이었다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현실에 눈뜨고 사랑과 배신, 죽음까지 감당했던 ‘고등어’의 ‘은림’, 망각된 기억을 되살려 과거의 아픈 순간과 마주한 뒤 다시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하진’이 그들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오랜 기간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받아온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1998년)는 후일담 소설은 아니지만 화자인 남편을 앞세워 여성(아내)의 외로움과 허무를 이야기했다.

1990년대로부터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2020년대가 됐다. 이 트로이카 중 누군가는 주춤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적인 의견이 달라서, 혹은 표절 논란에 실망해 떠난 독자도 많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세 작가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더 넓게 보게 하고 쓰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 무리에는 나도 포함된다. 어쩌면 소설가의 전성기란 계속해서 씀으로써 누군가에게 쓰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이렇게 정의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10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몇 개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고착화된 계급, 환경문제 그리고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페미니즘.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개인의 서사와 윤리가 요구될 때 등장해 한 시대를 이끈 트로이카가 모두 여성 작가(여류 작가가 아니다)라는 사실은 2020년대에 새겨들어야 할 과거의 메아리로 느껴진다. 이제, 더 큰 진보가 있길 바란다.
 
조해진 소설가
#신경숙#공지영#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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