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젊은 자객(2)

  • 입력 2002년 4월 4일 14시 52분


券一. 四海는 하나가 되었건만

젊은 자객 ②

육국(六國) 중에서 한(韓)이 가장 먼저 망하게 된 까닭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한이 화평과 실리를 앞세운 진(秦)의 천하통일책 연횡론에 가장 먼저 휩쓸려 들어갔다는 점일 것이다. 한은 선혜왕 때 상국(相國) 공중치(公仲3)가 진과의 연횡을 주장한 이래로 망하는 날까지 연횡과 합종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물론 한나라의 연횡론자들 중에는 진나라와 손을 잡는 게 진정으로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진 왕실 또한 황제(黃帝)의 자손임을 애써 우겼고, 그 백성들 또한 화하(華夏)의 한 핏줄기임을 내세우기도 했다. 더러는 현실적으로 진의 무력(武力)을 당할 길이 없어 위장된 굴복의 형식으로 연횡책을 고르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해서였든, 무지 때문이든 장량에게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 희평(姬平)을 재상자리에서 내쫓아 젊은 나이에 피를 토하며 죽게 한 것도 그 연횡책이었으며, 한낱 진나라의 내사(內史)에게 나라가 망하고 왕이 사로잡히게 될 만큼 조국 한나라를 허약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연횡책으로만 여겨졌다. 한이 육국(六國) 중에서 가장 먼저 망한 것은 지리적으로 진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 또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진나라 식으로 악용된 연횡책의 결과가 아니었던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장량의 눈길은 시황제의 행렬이 다가오고 있는 관도(官道) 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장량의 두 눈을 찔러오는 듯한 빛살이 있었다. 서북쪽 모래언덕[사구]을 돌아 나오는 갑사(甲士)들이 들고 있는 창검의 날이 뿜어내는 빛이었다. 시황제의 행차를 호위하는 시위대(侍衛隊)인 성싶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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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위대의 규모를 보면서 장량은 적지 않이 낙담했다. 시황제가 바로 진이며, 그의 순수(巡狩)는 곧 진 조정의 움직임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많은 시위대가 따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머릿수만 해도 일려(一旅〓500명)는 되어 보였다. 모두 번쩍이는 갑옷으로 몸을 둘러쌌을 뿐만 아니라 선두에는 수십 필의 기마가 길을 열고 있었다. 행렬의 앞머리가 그 정도이면 모두 합쳐서는 얼마나 많은 인마가 시황제를 호위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서지 않았다.

시위대에 이어 몇 대의 속거(屬車)들이 굴러 나왔다. 황제의 행차에 필요한 물품들을 싣고, 걷게 할 수 없는 벼슬아치들과 시중꾼을 태운 수레들이었다. 간편하게 만든 일산(日傘)을 얹고 허리 높이에 이르는 난간을 둘렀을 뿐, 사방을 막지 않은 통상의 수레로 네 마리 말이 끌고 있었다.

속거의 행렬에 이어 다시 한 떼의 보병 갑사들이 창검을 번쩍이며 뒤따랐다. 역시 일려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에워싸이듯 말로만 듣던 시황제의 온량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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