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4)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36분


黃帝의 세계(4)

주(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도 황제의 자손이다. 그의 어머니 강원(姜原)이 제곡의 정비(正妃)이니 은나라 시조인 설(契)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황제의 현손이 된다. 하지만 강원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그를 임신했다는 탄생설화는 간적(簡狄)이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낳게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계(父系)혈통에 대한 의혹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후직은 태어난 뒤의 설화로 미루어 보면 제곡의 혈통, 곧 황제의 자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든다. 강원이 갓난 후직을 길에 버렸더니 소와 말이 피해 지나가고, 깊은 숲 속에 버리니 난데없이 사람들이 몰려와 구했으며, 얼음 위에 던져 두었더니 날짐승들이 깃털로 덮어 주었다고 한다. 옛 기록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을 그렇게 버린 까닭을 별난 임신을 불길하게 여겨서라고 하나, 실은 수상쩍은 부계혈통이 준 부담이었던 듯하다. 후직의 이름이 기(棄)인 것은 그렇게 버림받은[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부모에게 거두어들여져 자란 후직은 농경에 능통하여 요임금 시절에 농사(農師)로 발탁되었다. 그때 붙여진 칭호가 후직이요, 받은 성은 희씨(姬氏), 땅은 태(邰)였다. 후직은 당요(唐堯) 우순(虞舜) 하우(夏禹) 삼대에 걸쳐 농관(農官)으로 일하면서, 때맞춰 씨 뿌리고 거두는 일을 가르쳐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후직이 죽자 아들 부줄(不K)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뒷날 하우씨의 자손들이 덕을 잃어 농관의 직책을 없애버리자 늙은 부줄은 일족을 이끌고 융적(戎狄)의 땅으로 달아났다. 그 뒤로 그 자손들은 오랑캐 땅에서 살게 되었으나, 황제의 핏줄은 역시 남달랐다. 부줄의 손자 공류(公劉)시절에 정교(政敎)가 크게 떨치기 시작하였고, 그 아들 경절(慶節)은 도읍을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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