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진(秦)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기 전 초(楚)나라는 다른 육국(六國)에 비해 특히 이질성(異質性)이 두드러졌다. 다른 나라가 대강(大江) 이북에 자리잡은 반면, 오(吳)와 월(越)을 아우른 초나라는 강남에 자리잡고 있었고, 북방의 나라들이 황토의 들판을 기마(騎馬)로 내닫는 만큼이나 초나라는 곳곳에 널린 호수와 하천에서의 물질에 능했다. 농사와 주식(主食)도 달라 강북의 육국이 밀 보리 농사를 많이 짓고 가루음식을 주식으로 하는데 비해, 초나라는 벼농사를 주로 하고 쌀밥으로 끼니를 삼았다.
종족과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달랐다. 북방은 한족과 그 언어를 중심으로 <시경(시경)>의 문화를 이룬데 비해, 초나라는 형만(荊蠻)이라고 부르던 남만(南蠻)의 갈래와 그 언어를 바탕으로 한 <초사(楚辭)>의 문화가 있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초나라의 춤도 남방문화의 특색을 이룰 만했으며, 애절한 오나라의 노래[吳歌]는 나중에 중국시가의 한 형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사람들의 성격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달랐다. 북방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긋하면서도 다소간 음모적인데 비해, 초나라 사람들은 직정적(直情的)이고 맹렬하며 쉽게 분기(奮起)했다. 하지만 그만큼 감성적이고 여린 데가 있어, 한번 사기가 상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약점도 있었다.
진(秦)의 시황제는 그런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에 초군(楚郡)을 두었다가 뒤에 다시 남군(南郡) 구강(九江) 회계(會稽) 세 군(郡)으로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회계군은 월(越)나라의 옛 땅인 회계산에서 이름을 따온 군이지만, 치소(治所)는 오(吳)나라의 옛 땅인 오중(吳中)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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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간의 요란스러운 쟁투로 <오월동주(吳越同舟)>나 <와신상담(臥薪嘗膽)> 같은 유명한 고사성어를 남긴 오와 월은 원래 오패(五覇)의 하나로 드는 이가 있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오나라는 월왕 구천(句踐)에 의해 춘추시대에 이미 없어졌고, 그때 오나라를 아우른 월나라도 오래잖아 시들어 그 왕 무강(無疆)이 초(楚) 위왕과 싸우다 죽은 뒤에는 초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시황제의 통일 뒤 회계군은 당연히 초나라의 옛 땅으로 여겨졌다.
그 회계군 오중 땅에 항량(項梁)이란 장년의 사내가 있었다. 예닐곱 해 전 항적(項籍)이란 조카 하나만 데리고 숨어들 듯 흘러든 이였다. 하지만 처음 나타날 때 그들의 행색에서 내비치던 고단함이나 외로움과는 달리, 그는 곧 오중 사람들의 믿음과 정을 사 그들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걸 바탕삼아 보이지 않는 힘을 길러 그 무렵은 진나라 조정에서 내려온 관리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오중 거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항량은 특별히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스러워 뵈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의 믿음을 사기에는 넉넉할 만큼 탄탄하면서도 단정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배우지 못한 이들이 의지할 만한 학식을 지녔으면서도 너그럽고 따뜻한 인품은 쉽게 정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중 사람들이 가슴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은 그 혈통이었다.
항씨(項氏)는 옛 초나라의 이름난 장군가(將軍家)로서, 일찍이 항(項) 땅의 제후로 봉해졌기 때문에 성을 항씨로 쓰고 있었다. 대대로 초나라를 위해 걸출한 장수를 배출해왔는데, 특히 초나라 최후의 명장(名將) 항연(項燕)은 모든 초나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항연은 하상(下相) 사람으로 초 효열왕(孝烈王) 때 장군이 되어 기우는 나라의 마지막 버팀목 노릇을 했다. 그가 훌륭한 장수였다는 점에서도 대개의 기록이 일치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 왕 부추(負芻〓荊王)와의 관계는 <사기>와 <자치통감>이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곧 <자치통감>에는 진나라 장수 왕전(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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