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15)

  • 입력 2002년 8월 1일 16시 20분


때를 기다리는 사내들 ③

그날 밤 장량과 항백은 늦도록 술을 마셨다. 전에도 여러 번 술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지만 그날 밤처럼 마음을 털어놓고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는 있어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던 소회와 강개(慷慨)를 마음껏 풀어내고, 때로는 같이 앓고 있는 망국(亡國)의 한을 거리낌없는 비분(悲憤)으로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리를 파할 무렵 항백이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장대협은 속 깊고 어질기가 실로 하늘이 낸 사람인 듯싶소. 몇 해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외다. 헛되이 나이만 먹어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나, 만약 내 목숨을 던져 장대협을 구할 수 있다면 내 반드시 그리할 것이외다. 이는 사사로운 은혜갚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요. 대협이 꾀하는 세상이 곧 하늘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일 것이외다. ”

“이 장 아무개에게는 실로 과분한 말씀입니다. 항형께서는 어리석고 재주 없는 저를 너무 크게 보셨습니다. 지난 몇 해 오히려 가르치심의 은혜를 입은 것은 저였습니다. 앞으로 어느 하늘 아래에서 만나더라도 항형께서 모르는 척 지나가지만 않으신다면, 저로서는 그보다 더한 감격이 없겠습니다.”

장량은 그렇게 겸양으로 받았으나 알 수 없어라, 사람의 일이여. 그 밤으로부터 채 여섯 해를 넘기지 않아 항백은 정말로 그 다짐을 지켜, 바람 앞의 등불같이 된 장량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일은 실로 천명(天命)과도 이어져 마침내는 진(秦)을 이을 왕조의 주인까지 바꾸어놓게 된다.

항백이 떠난 며칠 뒤 장량도 회음(淮陰)으로 급한 수레를 내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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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은 항백이 일러준 사람이 바로 횡양군 한성은 아니더라도 한나라 왕실의 공자 중에 하나일 수는 있다고 보았다. 회음이라면 한나라의 유민들이 많이 몰려 살아 그 왕족들이 숨어 살 만한 땅이었다. 거기다가 항백이 떠나기 전 마지막 기억을 짜내 일러준 그 이름은 장량을 더욱 급하게 만들었다.

“이제 떠올려 보니, 그 사내의 이름은 신이라고 하던가…. 맞소, 한씨 성에 이름은 신, 한신(韓信)이라고 했던 것 같소.”

항백이 들은 이름이 맞고, 그게 공자 신(信)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는 곧 한 양왕(襄王)의 얼손(f孫)이 된다. 비록 적통(嫡統)은 아니라 해도 엄연히 한나라 왕실의 혈맥인 데다가 제법 무예와 재능을 갖췄다는 소문이 있었다. 회양군 한성을 찾지 못하면 급한 대로 그를 왕으로 세울 수도 있었다.

장량은 젊은 시절에 공자 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신은 키가 여덟 자 다섯 치에 몸집 또한 우람했다. 그런데 회음에 있다는 왕손 신 또한 키가 남달리 크고 허우대가 멀쑥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에 장량은 항백이 떠난 다음 날로 좋은 마차를 내어 회음으로 달려갔다.

장량은 먼저 회음현(淮陰縣)의 하향(下鄕)이란 마을에 있는 남창정(南昌亭)부터 찾아갔다. 항백으로부터 그곳의 정장(亭長)이 한신을 돌봐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으나, 한신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장은 한신을 아는체조차 하지 않았다.

“잘못 들으셨습니다. 나는 한신이란 사람을 모릅니다. 그런 이름조차 처음 듣습니다 ”

남창 정장은 장량의 물음에 낯색 한번 변하지 않고 그렇게 잡아뗐다. 그러다가 장량이 이웃을 수소문하여 증인까지 세우자 겨우 털어놓았다.

“실은 제가 한 이태 그 뒤를 돌보아 준 적이 있습니다. 비록 나이 스물이 넘도록 제 밥벌이조차 못하는 위인이었지만, 그 풍모와 기상이 남달라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지요. 하지만 정장의 하찮은 녹봉으로 뒤를 돌봐준들 어디까지이겠습니까? 죽이건 밥이건 끼니나 함께하여 굶주리지나 않게 하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런데 대여섯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새벽에 밥을 지어 왔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함께 먹고 상을 치워버렸습니다. 실은 어질지 못한 아내가 군식구인 한신을 미워하여 그리한 것이었지요. 나중에 아침을 먹으러 온 한신은 아내가 자신을 미워하여 일찍 아침밥을 지어먹은 것을 이내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되돌아서서 나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뒤따라 나가 아내를 대신해 잘못을 빌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나중에 성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도 인사조차 않고 의절(義絶)의 뜻을 드러냈습니다.”

정장이 자못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전한 한신의 행적은 장량에게 적이 가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난세를 만났다지만, 하찮은 정장에게까지 밥을 빌어먹다 그 같은 욕을 당하는가.

그런데 다시 한신을 찾아 나선 장량이 수소문 끝에 두 번째로 만난 아낙은 그보다 더한 한신의 영락(零落)을 전했다. 그녀는 남의 빨래를 해주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아낙들[표모] 중에 하나였는데,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한신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 빨래터 근처에서 낚시를 하는데 늘 주린 기색이었지요. 그래서 그곳으로 빨래를 나간 한 철 내내 밥을 싸다 주었습니다. 그 또한 부끄러워하면서도 마다않고 받아 먹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제법 그럴듯한 어조로 ‘아주머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뒷날 반드시 크게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하더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 내가 성난 얼굴로 나무라 주었지요. ‘대장부가 어찌 스스로 밥을 벌어먹지 못하고 공연히 큰소리만 하는가’라고. 또 말해 주었지요. ‘내가 왕손(王孫)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었을 뿐, 어찌 보답을 바라 그리 했으리오’라고. 그랬더니 몹시 무안했던지 다시는 그 물가로 낚시를 오지 않더군요. 며칠 뒤에는 나도 빨래 일이 끝나 그 물가로는 다시 가지 않게 되어 지금은 그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그 말을 듣고 보니 실로 참혹했다. 그래서 장량은 더욱 마음먹고 한신을 찾아 하비로 데려가려고 회음 저잣거리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끝내 그는 찾지 못하고 또 다른 참혹한 일만 전해듣게 되었다.

“그라면 내가 본 듯하오. 이제 한 달포쯤 되었을 것이오. 성안 저잣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떼의 불량배들이 키가 크고 희멀끔한 젊은이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소. 에워싸인 것은 분명 족하(足下)가 말하는 그 사람이었소. 입은 옷은 허름해도 칼자루에 제법 보석 장식까지 한 긴 칼을 차고 있는 게 평민의 자제는 아니더구먼.

그를 에워싸고 있던 치들은 회음 성안 뒷골목의 한다하는 건달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백정[屠中] 차림을 한 녀석 하나가 나서더니, 한신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의 칼을 툭툭 치며 빈정거립디다. ‘네가 비록 허우대가 멀쑥하고 칼차기를 좋아하나 네놈 속은 겁만 잔뜩 들어있을 뿐이다. 개발에 편자를 대고 원숭이에게 관을 씌운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뿐만이 아니었소. 그 녀석은 한나라 왕실의 핏줄까지도 서슴없이 욕보이더군요. ‘너는 한(韓)씨 성을 쓰며 은근히 옛 한(韓)왕실의 자손임을 내세우는 모양이다만, 그게 어느 옛날 옛적 얘기냐? 천하가 모두 시황제 폐하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진(秦)의 영천군(潁川郡)뿐인데, 무슨 한나라가 있고 그 왕손과 공족(公族)이 따로 있느냐? 그러니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제 밥조차 벌어먹지 못하고 비럭질이나 하고 다니지.’ 그러더니 그 앞길을 막아서서 작달막한 가랑이를 한껏 벌렸소이다. 그리고 이죽거리더군요. ‘네가 정녕 용기가 있다면 나를 찌르고 그렇지 못하거든 내 가랑이 밑을 지나가거라!’ 하고 말이오.”

우연히 한신이 저잣거리 불량배들에게서 모욕을 당하는 광경을 본 늙은 장돌뱅이 하나가 거기까지 말해놓고 잠시 말을 끊었다. 숨이라도 돌릴 양인 듯했으나 장량은 거기서 더 듣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자리를 뜰 수가 없어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어이 못 볼 꼴을 전해듣고 말았다. 늙은이가 긴 한숨과 함께 얘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한신이란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큰 몸을 웅크려 작달막한 백정 녀석의 좁은 가랑이 사이를 비집듯 기어 지나갑디다. 내 이 저잣거리에서 비굴하고 겁 많은 치들을 본 게 한둘이 아니지만, 참으로 한심한 광경이었소. 한신이란 그 자, 아마도 나리께서 찾고 있는 공자 신(信)은 아닐 거요. 공자 신이라면 나도 전해들은 얘기가 있소. 그에게는 왕재(王才)가 있을 뿐더러 기개와 포부 또한 남다르다 했소. 하찮은 불량배의 행패가 무서워 그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겁쟁이일 리가 없소. 왕족(王族)은커녕 시시한 공족(公族)의 곁가지[庶孼]나 잔뿌리[末裔]도 못될 것이오.”

그 말에 장량은 그 자리에서 곧장 하비로 돌아가고 싶었다. 장량이 유달리 속 좁은 사람도 아니고, 그 나이 또한 세상의 맵고 쓴 맛을 모를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조국 한(韓)왕실의 위신과 품위에 관련된 일이라 그랬는지, 한신을 느긋하게 헤아려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늙은 장돌뱅이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온 뒤에 다시 한번 곰곰이 따져 보니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듯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속되고 경솔하게 그를 헤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난세에는 그것도 몸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한 좋은 방도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다음날 다시 저잣거리를 뒤지며 한신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회음에서는 자취를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데 밝은 다른 건달한테서 횡양군 한성의 소문을 들었을 뿐이었다.

“횡양군 한성이라면 대택향(大澤鄕)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택향이라는 고을은 장량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대택(大澤)은 흔히 치수(治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자연적인 큰 호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널리 알려진 대택으로는 맹제(孟諸) 거야(鉅野) 양우(楊紆) 여량(呂梁) 운몽(雲夢)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옛 초나라 땅에 있는 운몽대택(雲夢大澤)이 가장 이름이 높았다.

운몽대택에는 수백 리에 걸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 사이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수백 개의 못과 늪이 높고 낮은 언덕들과 어우러져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더러는 경관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 고을을 이루기도 했는데 대택 향(鄕〓1만2500호가 사는 마을)이 바로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대택향은 죄를 짓고 쫓기는 사람들이 숨어사는 땅처럼 되고 말았다. 아무리 물샐 틈 없는 진나라의 법이요, 엄한 그 관리라 하지만 대택으로 숨어든 범죄자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법과 관리가 뒤쫓지 않을 때는 대택향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가, 낌새가 좋지 않으면 연결된 못과 늪에 쪽배를 띄워 원시림과 갈대 숲 사이로 숨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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