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에서 일하고 있어야할 소하가 대낮에 직접 사상정(泗上亭)까지 찾아온 것은 유계에게도 조금은 별나게 느껴졌다. 관을 짜고 있던 대나무 껍질을 한쪽으로 치우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는데, 소하가 벌써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 공조나리께서 여기까지 어인 일이시오? 겨드랑이에 곰팡이라도 슬까봐 바람 쐬러나오셨소?”
너무나 차분하고 빈틈없는 소하의 사람됨에 대한 반발인지 유계는 왠지 소하만 보면 짓궂어졌다. 말 한마디도 그냥 하지 않고 비꼬거나 뒤틀어 단단한 껍질 속에 든 것 같은 소하를 어떻게든 건드려보고 싶어했다.
그런 면에서는 소하도 비슷한 데가 있었다. 한없이 크면서도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유계의 인품을 경계해서일까, 그만 만나면 소하는 평소보다 몇 배나 깐깐하고 차가워졌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인데도 소하는 웃음기 한번 띠는 법 없이 깐깐한 목소리로 받았다.
“유형과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들어가도 좋겠습니까?”
그리고 정 안으로 들어오더니 유계가 한 곁으로 쓸어놓은 대나무 껍질을 차가운 눈길로 잠시 훑어보았다. 그 따위 일에 몰두하고 있는 유계가 못마땅함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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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을 보니 작지 아니한 일이 있는 듯 하구나. 더구나 뭔가 내게 따지고 다짐받을 일이 있는 모양이고….)
유계는 그렇게 짐작하면서도 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소하가 차갑게 쏘아본 대나무 껍질 사이에 끼어있던 만들다 만 죽피관(竹皮冠)을 굳이 찾아냈다.
“어떻소? 이만하면 나도 검수(黔首)는 면한 것 같소?”
유계가 어설퍼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 관을 쓰고 빙글거리며 소하를 돌아보았다.
“사람의 높고 낮음은 쓰고 있는 관에 달린 게 아닙니다.”
소하가 여전히 찬바람이 돌 듯한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그래도 유계는 빙글거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소도 말도 면류관(冕旒冠)만 쓰면 천자가 되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한번 더 어깃장을 놓고 비로소 소하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때만 해도 탁자와 의자를 쓰던 시절이 아니었다. 정(亭)의 대청이라고 해봤자 흙봉당에 돗자리를 깔았을 뿐, 주인과 손님의 자리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유계는 한군데 어질러져 있지 않은 곳에 소하를 앉게 하고 자신은 벽에 기대 눕듯 비스듬히 앉았다. 그 또한 무례하고 거만하다 하여 소하가 아주 못마땅해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자세도 유용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으려 함인지, 소하가 바로 찾아온 까닭을 밝혔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유형이 함양을 다녀와야겠습니다.”
함양으로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유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슨 예감에서일까, 이제 겨우 쉰밖에 안된 시황제는 그해 들어 부쩍 자신의 능(陵)공사를 서둘렀다. 여산(驪山)에다 살아 생전의 영화를 그대로 재현한 어마어마한 무덤을 꾸미는데 수십만의 역도(役徒〓인부)가 필요했다. 따라서 그 무렵 패현같이 멀리 떨어진 고을에서 유계같은 하급 관리가 함양으로 간다는 것은 바로 그 여산의 황릉(皇陵) 공사에 쓸 역도를 이끌고 간다는 뜻이었다.
역도로 끌려가는 백성들도 괴롭지만, 이끌고 가는 관원의 처지도 그들보다 나을 게 별로 없었다. 도중에 달아나는 역도가 많은데다, 기한은 촉박하고 진나라의 법은 가혹했다. 자칫하면 죄를 받아 매를 맞거나 옥에 갇혔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잘해야 몸 성히 돌아오는 정도였는데, 그때도 오고가는 동안의 고생은 달리 호소할 데가 없는 덤이었다.
정장이 되고 난 뒤 유계에게도 몇 번이나 역도를 이끌고 함양으로 가야할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소하가 들어 막아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유계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능청스레 물었다.
“함양이라니? 갑자기 내가 함양에는 왜?”
“역도를 인솔해 가는 일도 정장의 소임입니다. 지금 패현의 정장들 중에는 두 번 세 번 함양을 다녀온 이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이 사상정의 역도들이 절반 넘으니 이곳 정장인 유형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계가 능청 떠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소하가 차근차근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유계는 말을 바로 받지 않았다.
“들으니 요즘 함양길은 절반이 저승길이라던데 어찌 이리 무정하시오? 내 원래 정장 자리에 뜻이 없었음은 소형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게다가 처자도 기르지 못하는 녹봉도 녹봉이라고 사람을 죽을 자리로 내몬단 말이오? 차라리 정장 노릇을 걷어치울지언정 뻔히 알며 죽을 구덩이로는 들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다시 어깃장을 놓았다. 소하가 고요하고 맑은 눈을 들어 한참이나 유계를 살펴보았다. 그제야 찔끔한 유계가 자신의 지나침을 난감해하고 있는데, 소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함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있어도 죽는 것만 못한 삶이 있듯이, 죽을 곳에 오히려 살 길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亭)에 들어서는 공연히 나다니는 하찮은 관리들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틈이 나면 대나무 껍질로 관이나 짜고, 정 밖으로 나가면 술집과 노름판 뒷전을 떠돌며 세월을 죽이는 게 진정으로 장부가 사는 모습일 수 있겠습니까? 어렵더라도 이번에 한번 길을 떠나 유형의 재주와 명운(命運)을 시험해보고, 아울러 세상 돌아가는 것도 차분히 살펴둠이 좋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째서? 세상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단 말이오?”
계가 더는 말을 비틀지 않고 솔직하게 물었다.
“유형은 듣지도 못하셨습니까? 재작년에 시황제는 온 천하의 책을 불사르고, 도사와 유생(儒生) 460 여명에게 사죄(死罪)를 내려 산 채로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어진 태자 부소(扶蘇)가 그 그릇됨을 말하자, 크게 성을 내며 오히려 태자를 상군(上郡)에 있는 장군 몽염(蒙恬)에게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작년에는 동군(東郡)에 살별이 떨어졌는데, 거기에 ‘진시황이 죽고 땅이 나뉜다’란 구절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시황제는 그게 누군가 사람이 조작한 것이라 보고 어사(御使)를 보내 철저히 캐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누구 짓인지 알 수 없자 인근 백리에 사는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돌을 불태워 없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황제는 그러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지 박사들을 시켜 <선진인시(선진인시)>라는 것을 짓게 해 순수(巡狩)하는 곳마다 전령과 악사들로 하여금 노래부르고 연주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늦가을에는 시황제의 사신이 밤중에 관동에서 화음으로 가다가 위수(渭水)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길을 막고 기이한 벽옥(璧玉)을 내밀며 ‘나를 대신해 호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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