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20)

  • 입력 2002년 9월 5일 16시 21분


亡命 ④

유계가 패현을 떠나던 날은 볼 만했다. 그가 이끌고 갈 사람들은 비록 품삯도 받지 못하는 역도(役徒·일꾼)로 끌려가기는 하나, 그래도 죄수나 노예와는 달랐다. 제 땅에서는 저마다 하늘같은 가장이요 사랑하는 지아비며 피를 나눈 형제거나 귀하게 기른 자식이었다. 그들 300명이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현청 앞으로 모여드니 군대처럼 엄정한 대오는 없어도 자못 위의(威儀)가 있었다.

유계도 먼 길을 떠나는 데다가 그들을 인솔하는 처지라 차림을 갖추다 보니 이전과 달랐다. 높은 코와 잘 생긴 수염은 나이 들며 더 짙어진 얼굴의 음영과 더불어 전보다 훨씬 성숙한 남성미로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공들여 짠 죽피관(竹皮冠)을 쓰고, 결 고운 베로 갖춰 지은 사대부 계층의 나들이옷을 걸치고 있으니 멀리서도 한눈에 가려낼 수 있을 만큼 훤칠한 장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볼 만한 것은 그를 배웅하러 나온 패현의 유지와 호걸들이었다. 먼저 현령과 여공(呂公)을 중심으로 소하와 조참, 하후영 같은 이들이 평소 유계와 가까이 지내는 다른 향리(鄕吏)들과 함께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자기를 칼로 찌른 유계를 덮어주느라 옥살이까지 한 적이 있는 하후영은 그때 현(縣)의 사어(司御〓말과 수레를 관장하는 관리)가 되어 있었는데, 유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못내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유계를 따라 함양으로 가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는 이들로는 노관과 번쾌가 더 있었다. 그 사이 처자를 거느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하까지 말려 이번에는 함께 가지 못하게 된 그들은 공연히 풀이 죽어 유계를 배웅 나온 저잣바닥 건달들 속에 끼어 있었다. 그들 속에는 틈만 보이면 유계에게 맞서다가 근래에야 그 밑으로 들어온 옹치(雍齒)가 있었고, 누에치기로 살며 남의 상사(喪事)에 피리를 불어주는 주발(周勃)도 보였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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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계 밑에 들지는 않았지만 먼 빛으로 흠모하고 있는 건달들도 여럿 나왔다. 그들 중에는 기신(紀信)과 주가(周苛)도 있었다. 비록 그들의 몸은 풍읍(豊邑) 인근의 농투성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 마음은 이미 드넓은 세상을 향해 날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뒷날 둘 모두 유계를 위해 죽게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된 것은 그날 그들이 보낸 흠모의 눈길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웃 현에서 협객을 자처하며 평소 유계와 연결을 맺고 있던 건달들도 패현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 중에는 수양현(Q陽縣) 저자에서 비단 장수를 하는 관영(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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