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요. 내가 듣건대, 유능한 군주는 신하를 잘 알고, 현명한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안다고 하였소. 선황께서 붕어(崩御)하실 때까지 아무도 제후로 봉하시지 않으셨으니 이 몸 같은 말자(末子)가 땅한 치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그때까지만 해도 시황제의 착한 막내였던 호해는 알 수 없다는 눈길로 조고를 보며 그렇게 받았다. 조고가 한층 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제 천하를 다스릴 큰 권한을 잡는 일은 공자님과 승상 이사, 그리고 저에게 달렸으니 도모하기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또 남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일과 남에게 억눌리고 다스림 받는 일이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호해가 놀란 표정으로 두 손까지 내저으며 소리쳤다.
“형을 가로막고 아우가 나서는 것은 불의이며, (형, 곧 부소에게) 죽을까 두려워하여 선황의 조서를 받들지 않는 것은 불효외다. 또 재주가 얕고 능력이 뒤지면서 억지로 남의 공로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참된 무능이 될 것이오. 이 세 가지는 사람과 하늘의 도리에 아울러 어긋나는 일이라,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몸까지 위태롭게 될 것이외다. 어디 그뿐이겠소? 끝내는 사직(社稷)마저 성하게 받들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 말은 호해가 원래 지녔던 식견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끝내 그걸 지켜내지 못하고 조고의 꾀임에 넘어간 뒤의 자신이 겪을 앞일까지 자못 밝게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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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해가 뜻밖에도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자 조고는 속으로 애가 탔다. 법령과 옥률(獄律)을 가르쳐준 스승으로서의 권위까지 은근히 내세우며 호해를 달랬다.
“제가 듣건대, 탕왕(湯王)은 그 임금인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죽이고 은(殷)나라를 세웠으며, 무왕(武王)은 임금으로 섬기던 은나라 주왕(紂王)을 죽이고 주(周)나라를 세웠지만, 천하는 오히려 그들을 의롭다 여기며 칭송하고, 아무도 그 불충(不忠)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또 위(衛)나라 임금[무공]은 자기 아버지를 죽였지만(실은 형을 죽임) 백성들은 그 덕을 받아들였고, 공자(孔子)도 그 일을 적으면서 불효라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대저 큰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어서는 아니되며, 큰 덕이 있는 사람은 천하를 위해 일하기를 사양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마을마다 제각기 예절이 다르고, 벼슬아치마다 할 일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돌아보다 큰일을 잊으면 나중에 반드시 그 때문에 해를 당할 것이며, 결단을 내려 과감히 행하면 귀신도 피해가서 반드시 공을 이루게 된다 합니다. 공자(公子)께서는 부디 굳게 뜻을 세우시어 이일을 결단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호해도 마음이 조금 움직였는지 한숨과 더불어 슬며시 물어왔다.
“하지만 승상이 뜻을 같이 해주겠소?”
“따르게 해야지요.”
“아직 선황께서 붕어하신 것도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고,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을 가지고 승상을 달랜단 말이오?”
이사만 동의해준다면 조고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이었다. 그제야 힘을 얻은 조고가 자신 있다는 듯 그러잖아도 쇳소리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더욱 서둘러야지요. 때가 때인 지라 일을 꾀할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양식을 지고 말을 채찍질해 밤낮으로 달려도 때맞추어 닿을까 걱정일 만큼 크고 급박한 일이 앞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공자께서 어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그때는 이미 호해도 마음을 정한 뒤였다.
“나는 일찍이 중거부령(中車府令)에게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요. 이번에도 가르침에 따르겠소!”
그렇게 조고의 음모를 받아들였다. 결국은 그게 호해의 됨됨이였고, 짧게 끝날 진(秦)제국의 명운(命運)이었다. 호해의 동의를 얻어내자 조고도 서둘렀다.
“어서 빨리 승상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이일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이 공자를 위해 승상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바로 이사에게 달려갔다.
“황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부소 공자에게 글을 남기셨는데, 거기에 따르면 그를 함양으로 불러 선제의 장례를 치르게 하고 후사(後嗣)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글은 부소 공자에게 보내지지 않았으며, 지금은 황제께서 붕어하신 것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그 글과 옥새는 모두 호해 공자가 가지고 있고, 대통(大統)을 정하는 일은 군후(君侯·승상을 높여 부름)와 저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군후께서는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고가 좌우를 물리친 뒤 이사에게 그렇게 묻자 이사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이 무슨 말씀이시오? 대통을 정하는 일이 우리 두 사람 손에 달렸다니 될 법이나 한 일이오? 경은 어찌하여 나라를 망칠 말씀을 그리 함부로 하시오? 그 일은 결코 신하로서 사사로이 논의할 일이 아니오.”
엄격한 법가(法家)로서 일생을 살아온 이사로서는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고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이사를 쏘아보다가 뭔가를 일깨워주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스스로 헤아리시기에 승상께서는 대장군 몽염과 견주어 어느 쪽이 더 재능이 낫다고 보십니까? 이제까지 세운 공은 몽염과 견주어 어느 편이 많습니까? 세운 계책이 원대할 뿐만 아니라 실패가 적었던 것은 어느 쪽입니까? 천하의 원한을 사고 미움을 받은 일은 어느 쪽이 더 적습니까? 선황의 맏이인 부소와 사귄 지는 누가 더 오래며, 그로부터 신임을 더 받는 쪽은 누굽니까?”
조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사에게는 송곳으로 고막을 찌르는 듯한 물음이었다. 이사는 한참이나 그 물음을 되씹어 보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되물었다.
“왜 갑자기 그걸 물으시오? 나는 그 다섯 가지 모두 몽염 장군보다 못하오.”
그러자 조고가 굳이 달랜다는 느낌조차 주지 않는 어조로 받았다.
“저는 비록 하찮은 환관에 지나지 않지만 다행히 법령을 문서로 작성하는 관리[刀筆吏]가 되어 진나라 조정에서 일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그 동안 위세 높은 승상이나 공신들은 많이 보았으나, 두 대[二代]를 이어가는 이는 보지 못했으며, 끝내는 파면되거나 형벌을 받아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스무 명이 넘는 선제(先帝)의 공자들은 승상께서도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맏이인 부소는 살핌이 밝으면서도 강직해서 자신이 쓸 사람은 자신이 뽑을 터, 만약 그가 황제로 즉위하면 반드시 오래 친해왔고 깊이 믿는 몽염을 승상으로 세울 것입니다. 그리되면 승상께서는 결국 통후(通侯〓列侯)의 인수(印綬)를 빼앗기고 쓸쓸히 낙향(落鄕)해야 하니 그 일을 어쩌시겠습니까?
그런데 공자 호해는 다릅니다. 제가 칙명을 받들어 공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법사(法事)를 익히게 한지 여러 해가 됩니다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잘못을 저지르신 적이 없습니다. 또 공자는 인자하고 독실하며, 재물을 가볍게 보고 인재를 무겁게 여깁니다. 마음속으로는 사물을 밝게 분별하고 계시면서도 말씀은 겸손하시고, 예절을 다하여 선비를 존중하실 줄도 압니다.
진나라의 여러 공자들 중에서 아직 이만한 분이 없으니, 후사로 내세워 볼만하지 않습니까? 승상께서는 다시 한번 곰곰이 헤아려보십시오“
하지만 시황제 밑에서 30년이 넘도록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골수에 박히다시피 한 법가의 정신은 쉽게 조고의 변칙과 일탈을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이사는 마음이 흔들릴수록 더 강경해져 꾸짖듯 소리쳤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라. 이 몸은 군주의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룰 뿐이다. 어찌 그같이 큰 일을 우리가 함부로 정할 수 있단 말인가!”
“평안함이 위태로움일 수도 있고, 위태로움이 평안함일 수도 있습니다. 제 한 몸의 평안함과 위태로움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면 어찌 어질고 밝다 이를 수 있겠습니까?”
조고가 이번에는 달래는 투로 은근하게 말했다. 이사는 그게 더 섬뜩해 자르는 듯한 말투로 받았다.
“이 몸 이사는 상채(上蔡)의 한 평민이었으나, 다행히 선제께서 여럿 사이에서 뽑으시어 승상으로 삼고 통후(通侯)에 봉하시니 자손들까지 모두 높은 벼슬과 무거운 봉록을 받게 되었소. 그럼으로써 나라의 존망과 안위를 이 몸에게 맡기신 것인데, 내 어찌 그 뜻을 저버린단 말이오? 대저 충신은 죽음을 피하려 요행을 바라지 않고, 효자는 삼가고 애써 그 몸을 위태로운 곳에 두지 않으며, 남의 신하된 자는 각기 그 직분을 지킬 따름이오. 다시는 어지러운 말로 나로 하여금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하지 마시오!”
"대체로 성인(聖人)은 무엇에 얽매임 없이 해야할 바를 하며, 사정이 변하면 시의(時宜)에 따르고, 끝을 보면 처음을 알며, 겨눈 곳을 보아 그 이를 곳을 헤아린다 하였습니다. 사물이 원래 이러하거늘, 굳게 정하여져 변함이 없는 게[固定不變]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천명은 공자 호해에게 이르렀으니 저는 그 걸 받들고자 합니다.
무릇 밖에서 안을 다스리려 하는 것을 ‘혹(惑)’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억누르려 하는 것을 ‘적(賊)’이라 합니다. 이제 와서 부소를 태자로 맞아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은 바로 혹(惑)이요 적(賊)입니다. 그러나 공자 호해를 세우는 것은,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시들고, 봄이 되어 물이 녹아 흐르면 만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반드시 그러해야할 이치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승상께서는 어찌 이리도 결단이 늦으십니까?”
“내가 듣건대, 진(晋)나라는 함부로 태자[申生]를 바꾸었다가 내리 세 임금[獻公,惠公,文公]이 평안하지 못했고, 제환공(齊桓公)의 형 규(糾)는 아우와 임금의 자리를 다투다가 그 몸이 죽임을 당했으며, 은나라 주왕(紂王)은 골육을 죽여가며 간언(諫言)을 듣지 않다가 나라는 폐허가 되고 끝내는 사직까지 잃고 말았다고 하오. 이 세 사람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여 죽어서도 종묘(宗廟)에 들지 못했소. 이제 그대가 하고자 하는 것도 골육간이 천하를 다투게 하는 것이니, 이는 곧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되오. 진나라의 신하되어 오래 봉록을 먹은 사람으로서 어찌 그같이 끔찍한 모반을 꾸밀 수 있겠소?”
이사가 그렇게 맞섰으나 간교한 조고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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