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二. 바람아 불어라…(1)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8시 28분


大澤의 회오리①

진나라 이세(二世)황제 원년(元年) 칠월, 조정은 몇몇 고을의 이문(里門) 왼쪽에 사는 이들 중에서 장정을 뽑아 변방인 어양(漁陽)으로 보냈다. 이문이란 동네[이] 어귀마다 세워둔 문인데, 진나라 때는 세금과 부역을 면해주는 가난뱅이들을 그 왼쪽에 살게 하고, 부자들은 오른 쪽에 살게 했다. 따라서 이문 왼쪽에 사는 이들을 변방으로 보냈다는 것은 나라 안의 빈민들을 변방으로 이주시켜 그곳을 지키며 버려져 있는 땅을 개척하게 했다는 뜻이었다. 이른바 수졸(戌卒)이었다.

하지만 이문 왼쪽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가난해도 터잡고 정붙여 살던 곳을 떠나기 싫어했다. 이에 진나라 조정은 군사를 풀어 그들을 억지로 제 살던 곳에서 끌어낸 뒤, 짐승 몰 듯 어양으로 몰고 갔다. 그 때는 수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몰고 가는 진나라 병사들에게도 꼭 지켜야할 기한이 주어졌다.

그 무렵 양성(陽城)과 양하(陽夏) 현의 이문 왼쪽에 살던 가난뱅이 900여명도 어양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대택향(大澤鄕)에 이르렀을 즈음 큰 비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 늪지와 큰 못 사이의 황무지를 개척해 연 향(鄕)이라 큰 비를 만나자 사방은 물바다가 되고 길은 모두 막혀버렸다. 할 수 없이 대택향에 머물며 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쉬 멎지 않아 어양에 이르러야할 기한을 넘기도록 길이 열리지 않았다. 엄한 진나라 법에 따르면, 끌고 가는 진나라 병사들뿐만 아니라 수졸(戌卒)로 끌려가는 이문 왼쪽의 사람들도 모두 목이 날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졸들의 둔장(屯長) 중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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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은 양성에서 나고 자랐는데 자를 섭(涉)이라 썼다. 보잘것없는 농군의 자식이라 많이 배우지 못했고, 배워 아는 게 없으니 벼슬길에 오르지도 못했다. 일찍부터 생업에 들어갔으나 그렇다고 크게 재물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가생(賈生〓賈誼)의 ‘과진론(過秦論)’에는 진승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진섭(陳涉)은 깨진 항아리의 주둥이를 (벽에) 끼워 창문을 만들고, 새끼로 지도리를 맬 정도로 누추한 집에 살았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머슴살이 농군으로 지내다가 변방으로 내몰리어 길을 떠나게 된 정부(征夫)였다. 재능은 보통 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했고, 중니(仲尼·공자)나 묵적(墨翟·묵자)같은 어짊과 덕도 없었으며, 도주(陶朱·월왕 구천의 신하였던 범려로서 뒷날 장사로 천금을 모았다) 의돈(o頓·소금으로 거만의 부를 쌓았다는 노나라 사람)같은 재부(財富)도 없었다......’

하지만 진승의 기상만은 일찍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던 듯하다. 젊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남의 집 머슴살이할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밭 두렁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쉬는데, 홀로 침울해 있던 그가 갑자기 여럿을 보고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지금은 빈천하나 만약 부귀하게 된다면 서로를 잊지 맙시다!”

그때만 해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지 오래되지 않은 때라 사회가 안정되고 제도가 정비되어 신분 변동이 쉽지 않을 때였다. 머슴들이 그를 비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이나 우리나 반반한땅 한 뙈기 없어 남의 머슴살이하는 처지가 아니오? 그런데 무슨 부귀를 얻는단 말이오?”

그러자 진승이 문득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 수 있으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哉]?”

어찌 보면 자존 망대(自尊妄大)같기도 하지만 당시의 의식수준으로 보면 대단한 자기확신이요 호기(豪氣)였다.

오광(吳廣)은 양하(陽夏)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었다. 진승이나 마찬가지로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 가계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자라서는 힘이 세고 몸이 날랬으며, 총명하지는 못해도 신의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진승과 오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그들의 고향으로 미루어 보면 수졸로 뽑히게 되면서부터 만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한번 친해지자 곧 간담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나란히 둔장이 되어 적지 않은 수졸들을 거느리게 되면서부터는 죽음으로 뜻을 함께 한다는 맹서(盟誓)까지 나누게 되었다.

대택향에서 큰 비를 만나 어양에 닿아야할 기한을 넘기게 되자 진승이 오광을 불러놓고 가만히 의논했다.

“이제 우리는 어양에 가도 기일을 어겨 목을 베이게 되고, 도망을 친다 해도 막막한 진나라 천지에서 살아날 길이 없다. 진나라에 맞서 들고일어나도[義擧] 마찬가지로 강하고 날랜 진나라 군대에게 잡혀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무얼 해도 똑같이 죽을 뿐이라면 천하 뭇 백성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

“천하 뭇 백성을 위해 싸우다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오?”

오광이 놀란 눈으로 진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승이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천하 사람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다스림으로 고통받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마땅히 그들을 위해 진나라와 맞서 일어날 때다.

내가 들으니 이세 황제가 된 호해(胡亥)는 막내아들이므로 제위를 계승할 수 없으며. 마땅히 황제가 되었어야 할 이는 맏이인 부소(扶蘇)라 하였다. 부소가 여러 차례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하자 시황제는 그에게 군사를 주어 멀리 변방으로 쫓아버렸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무 죄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황제가 죽을 무렵 곁에 있던 막내 호해가 음모를 꾸며 그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부소가 어질고 재능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나 정작 그가 죽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또 항연(項燕)은 초나라의 이름난 장수로서, 거느린 장졸들을 아끼고 여러 차례 싸움에서 공을 세워, 초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러러 받들었다. 초나라가 망한 뒤에도 어떤 사람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멀리 도망가서 숨었다고도 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받들면서도 정작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이제 만약 우리가 천하 사람들을 위해 부소와 항연을 가장하고 깃발을 세운다면 그들을 흠모하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다. 거기다가 진나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울 것이니 안될 게 무엇이겠는가?“

오광이 들어보니 그럴 듯했다. 하지만 조금씩 흔들리기는 해도 아직은 온전한 진의 천하라 서뿔리 나서기에는 켕기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큰소리는 쳐도 두렵기는 진승도 마찬가지여서, 둘은 먼저 점쟁이를 찾아가 앞날을 물어보았다.

점쟁이는 한눈에 그들을 알아본 듯했다. 정성을 다해 시초(蓍草)를 뽑고 거북껍질[龜甲]을 굽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로 엄청난 일을 하려고 하는구려. 만약 당신들이 꾀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천하를 위해 큰공을 세우게 될 것이오. 하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니 되오. 반드시 귀신들의 도움이 있어야할 것이오.”

진승은 그 말에 기뻐하였으나 오광은 걱정이 되었다. 점쟁이의 집을 나서기 바쁘게 진승에게 물었다.

“귀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우리가 무슨 수로 귀신들의 도움을 청한단 말이오?”

그러자 진승이 빙그레 웃으며 오광을 안심시켰다.

“그것은 우리들이 귀신 노릇을 해 사람들로부터 위엄과 믿음을 사라는 뜻일세.”

그리고는 그날로 꾀를 부려 괴이쩍은 방도로 사람들을 홀렸다.

진승과 오광이 귀신의 뜻을 가장하기 위해 첫 번째로 이용한 것은 물고기였다. 그들은 흰 비단 위에 주사(朱砂)로 ‘진승이 왕이 된다[陳勝王]’ 고 쓴 뒤 몰래 어부가 그물로 잡은 큰 물고기 뱃속에 쑤셔 넣었다.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을 써서 여러 마리의 물고기 뱃속에 넣었는데, 그것도 곧 수졸(戌卒)들에게 팔려갈 물고기들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 물고기를 산 수졸들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배를 따자 붉은 글씨가 쓰인 비단 조각이 나왔는데, 일이 기괴할 뿐만 아니라 적힌 내용이 너무도 엄청났다. 자칫하면 그런 글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화를 당할 것 같아 얼른 없애버리고 말았지만, 진승이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진승과 오광이 귀신의 뜻을 전하러온 영물(靈物)로 내세운 것은 여우였다. 진승은 오광을 시켜 한 밤중에 몰래 그들이 묵고있는 곳에서 가까운 숲으로 숨어들게 했다. 그 숲 속에는 오래된 사당이 하나 있었다. 오광은 그 사당 앞 공터에 불빛이 별난 모닥불을 피우고 자신은 흰 여우가죽을 뒤집어 쓴 체 뛰어다니며 여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시절 오래된 사당에 여우가 집을 짓고 사는 일은 이상할 게 없었고, 거기서 들리는 여우의 울음소리도 귀에 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 사이에 끼어 드는 높고도 맑은 가락 같은 목소리는 이내 수졸들의 이목을 끌었다.

“초나라가 크게 흥하리라[大興楚]

진승은 왕이 되리[陳勝王]”

오래 되어 음산하고 기괴한 사당 앞에서, 깊은 밤 푸르스름한 빛살 가운데 크고 흰 여우가 뛰노는 광경도 섬뜩했지만, 그게 노래한 내용은 더욱 그랬다. 아무도 감히 나서서 정말로 여우인지 아닌지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만 날이 밝자 끼리끼리 모여 간밤의 일을 수근거릴 뿐이었다.

거기서 다시 수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진승이란 이름은 절로 며칠 전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비단 조각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하늘이 물고기에 이어 이번에는 여우를 보내 거듭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수졸들은 새삼 주의 깊게 진승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를 찾아보고 또 살피게 되었다.

어느 정도 때가 익었다고 여기자 진승은 먼저 오광을 내세워 일을 벌였다. 오광은 평소 사람들을 자상하게 돌봐주어 많은 수졸들이 그를 따랐다. 오광은 그들을 데리고 그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벼슬아치인 장위(將尉)를 찾아갔다.

장위는 양성현의 두 현위(縣尉)중에 하나로서 병사 수십 명과 함께 그들 900명을 어양으로 끌고 가는 일을 맡은 자였다. 끌려가는 수졸들에게는 평소 똑바로 쳐다보기도 거북할 정도로 높은 벼슬아치였으나, 그날 오광은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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