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 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4분


장함은 희수(戱水) 가의 한 싸움으로 진승(陳勝)이 보낸 십만 대군을 여지없이 쳐부수고도 급하게 적을 내몰지는 않았다. 그 장수 주문(周文)이 남은 졸개들을 이끌고 함곡관을 빠져나가도 뒤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뒤 달포가 넘도록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다. 위수 남쪽 넓은 벌판을 골라 군사들을 풀어놓고 오직 그들을 조련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그 사이 주문은 조양(曹陽)까지 물러나, 희수에서 살아 도망쳐온 군사들을 수습하고 새로 인근의 백성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불려가고 있었다. 사람을 시켜 살피고 있던 조고가 아우 조성을 보내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도적을 쫓아 그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으시오?”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되돌아서 고양이를 무는 법이외다. 저들은 바로 그 막다른 곳에 몰린 쥐 같은 무리라, 공연히 뒤쫓다가 소중한 군사를 잃을까 걱정되어서 그랬소이다.”

“그래도 한 달이 넘도록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지난번에 군사를 낼 때는 따로 조련이 필요 없다며 오히려 서둘지 않았소?”

“그때는 많은 머릿수로 제 땅에 앉아서 먼길을 온 도적떼를 갑자기 들이치는 일이었소. 기세와 신속함을 위주로 하는 야습(夜襲)이라 역도(役徒)로서의 조련만으로도 되었지만, 이제는 다르오. 함곡관을 나가면 우리는 적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싸워야 하니, 조련이 없으면 그야말로 아무런 가르침 없이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꼴이 되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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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함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덧붙였다.

“하지만 돌아가서 낭중령께 심려 말라 이르시오. 선제(先帝) 때 싸워본 적이 있는 장졸들을 찾아 모아 머리와 허리로 삼았더니, 다행히도 조련이 빨라져 이제 곧 쓸만한 군사가 될 듯하오. 군량과 병기만 지금처럼 대어주신다면 이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나가 크고 작은 도적떼를 모조리 쓸어버리겠소!”

그리고 꼭 두 달을 채운 뒤에야 군사를 휘몰아 함곡관을 나갔다. 이때 장함을 거들어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찾아낸 옛 진군(秦軍)의 장수 왕리(王離)와 소각(蘇角=蘇公 角이라고도 한다), 섭간(涉閒)등이었다.

한편 그 무렵 조양에 머물며 힘을 기르던 주문은 두 달 전 함곡관으로 밀고들 때의 세력을 거의 회복해 있었다. 장함이 뒤쫓아온다는 소리를 듣자 새로운 각오로 전열(戰列)을 펼치고 매서운 반격을 노렸다. 일찍이 대재상 춘신군(春信君)과 명장 항연(項燕) 밑에서 자신을 단련하였고, 진(陳)땅의 현인(賢人)으로 널리 우러름을 받았던 주문에게는 무엇보다도 희수 싸움으로 짓밟힌 자신의 위신을 되살리는 일이 급했다.

양군이 맞닥뜨린 것은 조양정(曹陽亭)에서 멀지 않은 들판이었다. 이전의 세력을 회복했다고는 하나 주문의 군사는 장함이 거느린 2십 여만에 비해 우선 머릿수부터가 훨씬 적었다.

“겁내지 말라. 적군은 죄수들을 끌어 모아 온 오합지중(烏合之衆)이다. 한 싸움으로 무찔러 우리 장초(張楚)의 기상을 보여주자!”

주문이 그렇게 봉기군의 의기(義氣)에 호소했으나, 넓은 들판에서 정면으로 장함을 맞은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머릿수뿐만 아니라 규율과 조련에서도 진군(秦軍)은 이미 두 달 전의 그 죄수와 노비를 뒤섞은 잡동사니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날카로운 병기와 든든한 갑옷에 병참(兵站)까지도 주문의 군대와는 달랐다. 주문의 군사들은 무엇이든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비해 장함의 군대는 아직 본국 진나라와 이어진 병참선(兵站線)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문의 군대가 장함의 진군(秦軍)에게 뒤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장수들이었다. 항연 군대의 시일(視日)이나 춘신군의 모사(謀士)였다는 전력이 말해주듯이 주문 자신도 제대로 된 무장(武將)은 못되었지만, 그 밑의 장수들은 더했다. 잘해야 녹림(綠林)이나 초적(草賊)의 우두머리요, 그도 아니면 뚝심 하나로 장수노릇을 하는 건달이 고작이었다.

거기 비해 장함은 비록 문관(文官)인 소부(少府)일을 맡아보고는 있었으나 오랫동안 자신을 갈고 닦아온 장재(將材)였다. 장수들 중에도 그가 힘들여 찾아 데리고 나온 왕리와 소각, 섭간 등은 수많은 싸움터를 헤쳐온 무골(武骨)들로, 시황제 시절에 진나라 장수들이 누리던 명성을 이을 만했다. 특히 왕리는 진의 또 다른 명장 왕전(王剪)의 조카로서 일찍부터 몽염을 따라 흉노와 싸우면서 장수로서의 이력을 쌓아온 맹장이었다.

나중에 싸움터에 이르러 주문의 진세를 둘러본 장함이 장수들을 불러 명을 내렸다.

“왕리와 소각 섭간은 각기 한 갈래 갑병(甲兵)을 이끌고 적진을 관통하여 도적 떼를 몇 토막으로 흩어놓으라! 그 뒤를 우리 삼군(三軍)이 일시에 들이쳐 토끼 몰듯하리라!”

그러자 세 장수는 각기 한 갈래의 갑병을 휘몰아 나름으로는 진세(陣勢)라고 벌려놓은 주문의 대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갑옷으로 단단히 몸을 감싼 체, 당시의 어떤 병기보다 강하고 날카로운 진과(秦戈)를 앞세운 군사들이 대쪽을 쪼개듯 하는 기세로 뚫고 나가면서 주문의 대군을 서너 토막으로 갈라놓았다. 놀란 주문이 끊긴 지휘선(指揮線)을 다시 이으려고 하는데 틈을 주지 않고 장함이 남은 군사를 휘몰아 파도처럼 덮쳐왔다.

래도 머릿수가 적고 조련과 병기에서 아울러 뒤진 주문의 군사들이었다. 거기다가 전술까지 서툴러 벌판에서 정규전을 벌이다 강습(强襲)을 당하고 나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뭉개져서 대오고 뭐고 없어졌다. 장졸을 가리지 않고 거미새끼처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바빴다.

기실 이런 형태의 싸움은 나중에 항우의 강병(强兵)을 만나 무너질 때까지 장함이 관동(關東)의 반란을 진압할 때 쓴 전략 전술의 한 전형이 되었다. 곧 집중되어 강화된 전력으로 분산되어 약화된 봉기군의 갈래를 강습으로 일격에 격파해버리는 방식이었다.

봉기군의 우두머리들은 그 동안 압제에 시달린 백성들의 지지아래 소규모의 병력밖에 없는 군현(郡縣)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해왔다. 거기다가 실속 없이 요란하기 만한 자기들의 기세에 스스로 취하여 마땅히 의지해야할 유격전(遊擊戰)의 이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진나라 조정이 마지막 힘을 짜내 내보낸 정규군의 대군을 겁 없이 정면으로 맞서다가 무참하게 무너져 갔다.

주문이 패군을 수습한 것은 조양에서 한나절이나 도망을 친 뒤였다. 뒤쫓는 군사들의 함성이 잦아져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돌아보니 거기까지 따라온 것은 부장(部將) 두엇과 몇 십기(騎)의 호위군사 뿐이었다.

“여기가 어디냐?”

주문이 그렇게 묻자 길을 잘 아는 군사가 대답했다.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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