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東阿)의 싸움에서 크게 이긴 무신군 항량이 그대로 전군(全軍)을 들어 급하게 장함을 뒤쫓을 수 있었다면 장함이 아무 일없이 그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싸움에 이긴 제나라와 초나라 연합군 사이에 뜻하지 않은 변고가 있었다. 전영(田榮)이 제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 가버린 일이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제나라를 되 일으킨 형님[田담]의 아들들을 두고 옛 제나라 왕실의 핏줄인 전가(田假)를 찾아내 왕으로 세운 일은 실로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일이외다. 그 일부터 바로잡지 않고서는 천하의 대의를 말할 수 없을 것이오!”
그같은 전영의 말에 항량과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바람에 초군(楚軍)만 장함을 뒤쫓게 되었는데, 그것도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야 했다. 곧 항량은 대군과 함께 북쪽 복양(복陽)으로 달아나는 장함의 주력을 뒤쫓고, 상장군 항우와 패공 유방이 이끄는 군사는 성양(城陽)으로 달아난 또 한 갈래의 진군(秦軍)을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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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에서 초나라를 다시 일으킨 이래로 항우와 유방은 한 깃발 아래서 싸워오고 있었다. 그러나 둘 모두 항량이라는 큰 그늘 아래서 다른 여럿과 함께 움직여 서로를 깊이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성양을 치기 위해 두 사람만 따로 떨어져 나온 게 다시 한번 서로를 유심히 관찰할 기회가 되었다.
성을 에워싸고 들이치기 시작한 때부터 성이 떨어질 때까지의 사흘 동안 유방은 항우의 엄청난 힘과 기개를 다시 한번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었다. 먼저 으스스한 느낌이 들 정도로 눈부신 것은 항우의 무예였다. 구름사다리 위를 평지 내닫듯 하여 성벽 위로 뛰어오르면 그곳이 곧 무인지경이었다. 철극(鐵戟)이나 보검을 휘두르며 나아가는데 장수고 졸개고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항우의 무예보다 더욱 유방을 질리게 하는 것은 상대를 만근 무게로 억누르는 듯한 야릇한 기세였다. 항우가 머리칼과 수염을 곤두세우고 벽력같은 호통과 함께 달려나가면 마음 여린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창칼을 놓고 폭삭폭삭 주저앉았으며, 장수들 중에는 싸워보지도 않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자까지 있었다.
거기다가 가까운 곳에서 항우를 보니 장수로서의 자질도 뛰어난 데가 있었다.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자고 같이 먹으면서도 싸움터에서는 앞장을 섰다. 또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병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하기 마다하지 않았다.
항우도 유방에게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았다. 유방은 무예가 빼어나지도 않고 용맹 때문에 우러름을 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글은 쓰고 읽을 줄 알았으나 그리 학식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꾀나 슬기가 남다른 것은 더욱 아니었다. 용모가 훤칠하기는 해도 위엄으로 사람을 누르지는 못했고, 장수로서도 인품은 너그럽고 부드러웠지만 자상하게 병사들을 보살피는 쪽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싸움에 나서면 모든 것은 사뭇 달라졌다. 모자라는 데가 많지만 유방이 싸움터에 나와 서 있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것을 채워주었다. 한 떼의 촌뜨기들이 유방 주위에 몰려 있다가 용기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그를 대신해 목숨을 걸고 뛰쳐나왔고, 기세가 필요하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그를 위해 좌충우돌 내달았다.
그 때문에 항우와 유방은 서로를 다시 보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그때까지도 쓸데없는 경계심으로 자라지는 않았다. 성양을 쳐부순 뒤의 처분을 놓고 주고받은 두 사람의 논의가 다시 서로를 마음놓게 한 까닭이었다. 성이 떨어지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진군이 마침내 항복하자 항우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신의 장졸들에게 명했다.
“진나라의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끌어내어 죽여버려라!”
그때 유방이 놀라 말했다.
“저들은 힘이 다해 항복한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모두 죽여버린다면 앞으로 누가 장군께 항복하겠습니까? 모두가 죽기로 다해 싸울 것이니 더 많은 우리 장졸이 상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그건 패공께서 잘못 보셨소. 끝까지 맞서다가 힘이 다해서야 항복한 자들을 용서하면 다른 성, 다른 싸움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오. 무서운 본보기를 보여 우리에게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우리 장졸들을 아끼는 일이 될 것이외다.”
그리고는 장졸들을 몰아대듯 항복한 진나라 병사와 관리들을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그걸 보며 유방은 속으로 탄식해마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까닭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말하는 천하는 결국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도 그를 죽이면 슬퍼하고 성낼 사람이 백 명은 넘는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저리 하찮게 여겨 앞으로 사게될 그 많은 원한은 어찌할 것인가. 항우, 과연 그대는 모든 점에서 나를 뛰어넘는 엄청난 기력의 사람이다. 그러나 한바탕의 전투에서는 언제나 이기겠지만, 천하를 다투는 큰 싸움에서는 아마도 끝내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일로 유방을 마음놓고 보게되기는 항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수어야 새로 세울 수 있고, 죽여서 더 많이 살리는 수도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러한 때다. 나에게 맞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똑똑히 보여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함양에 이를 때까지 내가 아끼는 초나라의 병사와 장수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할지 모른다. 저 사람은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면 인정 많은 재상쯤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제 고을도 지켜내기 어려울 만큼 용렬한 장수가 될 것이다.)
편 서쪽으로 장함을 쫓아갔던 항량은 복양 동쪽에서 다시 한번 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전영이 제나라로 돌아가버린 데다 항우와 유방에게 다시 적잖은 군사를 떼어준 터라 적을 뿌리뽑을 만큼은 못되었다. 또다시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한 갈래 세력을 이룬 장함은 복양성 안으로 쫓겨 들어가 항량과 맞섰다.
장함이 높고 두터운 성벽에 의지해 버티니 그걸 에워싸고 들이쳐야 하는 항량에게는 싸움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항우와 유방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겨를이 없어 다시 전영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자를 보냈다.
그때 전영은 이미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 제나라를 뒤엎은 뒤였다. 새로 제나라 왕이 됐던 전가(田假)는 전영에게 쫓겨 초나라로 달아났고, 상국(相國) 전각(田角)은 조나라로 몸을 피했으며, 조나라를 도우러 갔던 장군 전간(田間)은 감히 제나라로 다시 돌아올 엄두를 못냈다. 전영은 그들을 대신해 전담의 아들 전불(田불)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상국이 되어 전불을 보살피는 한편 전횡(田橫)을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 땅을 평정케 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는 항량의 사자가 이르자 전영이 그 사자를 돌려보내며 말했다.
“가서 무신군께 전하시오. 초나라가 전가를 죽이고, 조나라가 전각과 전간을 죽여 그 목을 내게 보내준다면 우리 제나라도 서쪽으로 진나라를 정벌하는 군사를 낼 것이오.”
하지만 초나라도 조나라도 전영의 뜻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가는 한때 우리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서던 나라의 왕이었다. 이제 신세가 곤궁하게 되어 우리 초나라에 의탁하였는데 어찌 차마 죽일 수 있겠는가”
항량은 그런 답서를 띄웠고 조나라도 전각과 전간을 죽여 제나라와 흥정하려들지는 않았다. 그러자 성이 난 전영은 끝내 군사를 보내 항량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이에 항량은 복양을 버려 두고 군사를 남으로 돌려 정도(定陶)로 향했다.
때마침 성양을 떨어뜨리고 성안의 진나라 관리와 군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항우와 유방의 군사들은 정도를 에워싸고 들이치고 있었다. 그러나 쉽게 떨어지지 않아 다급해 하고 있는데 항량의 대군이 이르렀다. 그들 두 갈래 군사가 합쳐 이 새로운 기세로 몰고 들자 정도도 더는 견뎌내지 못했다. 성을 지키던 진군(秦軍)은 수많은 시체를 남기고 저희편이 있는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도를 차지한 무신군 항량은 다시 항우와 유방에게 따로 군사를 떼어주며 먼저 서쪽으로 밀고 나가게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끄는 군사가 옹구(雍丘)에 이르렀을 때였다. 삼천(三川) 군수 이유(李由)가 이끈 진나라의 대군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유라면 일찍이 못된 꾀로 여정(呂政=시황제)을 도와 육국(六國)을 차례로 망하게 한 이사(李斯)의 아들이오. 그 목을 얻어 무신군께 보내드리면 몹시 기뻐하실 거외다.”
항우가 그러면서 적군과 부딪히기도 전에 전의를 불태웠다. 유방도 구석진 군현(郡縣)을 지키는 이름 없는 수장(守將)의 군사들과 싸울 때와는 달리 긴장이 되어 싸울 채비를 갖추었다. 이유도 싸움을 서둘러 양군은 옹구현 성밖 벌판에서 맞닥뜨렸다. 병법도 계략도 내세우지 않은 힘과 힘의 격돌이었다. 하지만 그런 싸움이라면 누구보다도 항우가 유리했다.
“패공께서는 본부 인마를 이끌고 중군(中軍)이 되어 뒤를 받쳐주시오. 나는 강동(江東) 형제들과 더불어 바로 이유의 본진(本陣)을 짓밟아 버리겠소. 내가 적진을 돌파하여 진군이 혼란에 빠지거든 패공께서도 때를 놓치지 말고 전군을 휘몰아 덮쳐와야 하오. 그러면 이 싸움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소.”
그리고는 갑옷을 여미더니 60근이 넘는 철극을 끼고 훌쩍 오추마(烏추馬)에 뛰어올랐다. 유방이 보니 한줄기 검푸른 기운이 먼지를 끌며 벌판을 내닫는데, 그 뒤를 강동의 정병(精兵) 3천이 한덩이가 되어 내달았다. 말과 사람이 내닫는 빠르기가 같지 않아 마치 항우를 그 날카로운 끝으로 삼는 커다란 쐐기가 무서운 기세로 이유의 중군을 쪼개 놓는 것 같았다.
진군도 마주쳐 나왔으나 격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쐐기의 끝이 진군 가운데로 파고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거센 바람에 쏠리듯 진군이 이쪽 저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아직 되돌아서서 달아나는 자는 없었으나 겁먹고 놀란 것만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북을 울려라. 모두 앞으로 나아가자!”
유방이 칼을 뽑아들며 남은 군사를 휘몰아 항우를 뒤따랐다. 병졸들도 승세는 알아보아 함성과 함께 내닫는 초군(楚軍)의 기세가 또 여간 사납지 않았다. 그러자 힘겹게 버티던 진군이 드디어 무너져 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칼을 내던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그 대장 이유였다. 대단한 장재(將材)도 못되면서 긴 창을 꼬나 잡고 항우에게 맞서다가 몇 번 말이 엇갈리기도 전에 항우의 철극에 꿰어 목을 잃고 말았다. 꼭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목을 항우에게 바쳤는데, 어떤 사람은 그게 이미 끔찍한 함양의 소식을 들어 혼이 뜬 탓이라고 한다. 그 무렵 그의 아버지 이사는 함양의 감옥에서 갖은 고통과 치욕을 겪은 끝에 일족(一族)과 함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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