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52분


어떤 종말(1)

진승과 오광의 기의(起義)는 만세(萬世)를 이어가기 바라던 진(秦) 제국의 천하를 그 바탕으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문명이 그러했듯, 강력한 제국도 외부의 충격만으로는 붕괴시킬 수가 없다. 진 제국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위해서는 내부의 부패와 공동화(空洞化)가 더 진행되어야 했다.

진나라를 제국으로 키운 것은 형명학(形名學)을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 정책이었다. 하지만 진 제국을 내부적으로 무력하고 위태롭게 만든 것 또한 썩고 굳어버린 형명학이었다. 여러 공자 중 하나였던 호해(胡亥)가 이세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제위(帝位) 계승권의 실질보다 형식이 우선된 진나라의 제도 때문이었으며, 진승과 오광의 봉기를 부른 것도 썩으면 백성을 착취하는 수단이 되고 굳으면 폭정의 구실이 되는 법치(法治)였다.

하지만 썩고 굳은 형명의 원리는 그 뒤로도 아무런 반성 없이 진 제국의 최후를 재촉하고 있었다. 호해라는 특이한 개성에 왜곡되고, 조고(趙高)란 환관의 정신적 불구에 모욕당하고 이사(李斯)란 타락한 선비에게 부패되면서. 따라서 진 제국 내부의 말기적 증상은 곧 형명의 종말로 나타낼 수도 있는데, 그 중에서 끔찍하면서고 상징적인 것이 이사의 죽음이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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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의 꾐에 넘어가 호해를 이세황제로 세울 때부터 이사의 형명학은 부패를 넘어 치욕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이사의 이름에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입힌 것은 조고와 아첨하기를 겨루면서 이세 황제의 잔혹과 포악을 부추긴 그의 상소였다.

<........신자(신자= 신불해. 법가)는 일찍이 ‘천하를 소유하고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천하를 차꼬와 포승으로 여김과 마찬가지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른 뜻이 아니라, 신하를 제대로 꾸짖지 못하면서 요(요)임금과 우(우)임금처럼 도리어 자신의 몸을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힘쓰고자 한다면, 천하는 군주에게 죄수를 얽고 묶는 차꼬나 포승과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무릇 신불해나 한비자(한비자)의 훌륭한 법술을 배우지도 못하고, 신하를 꾸짖을 줄도 모르고, 천하를 마음대로 부리지도 못하면서, 부질없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힘써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은 보잘것없는 필부의 일이지 천하를 다스리는 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 군주라면 어찌 군주를 존귀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남이 자기를 따르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지고 남은 천해지며, 자기를 남에게 따르게 하면 자기는 천해지고 남은 존귀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천해지고 남이 따르는 이는 존귀하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 왔습니다.

...........한비자가 이르기를 ‘자비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아들이 있어도 엄격한 집안에는 방자한 하인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 옛날 상군(상군=상앙)의 법에는 길에 재를 버리면 벌을 주었는데, 재를 버리는 것은 가벼운 죄이나 그 벌은 몇 곱이나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무겁게 꾸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벼운 죄도 그토록 엄하게 다스리니 무거운 죄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백성들이 감히 죄를 짓 못하니 한비자가 그 일을 두고 말하기를 ‘하찮은 베나 비단 조각은 여느 사람도 그냥 두지 않지만, 좋은 황금이 백 일(일= 약 스무냥)이나 된다면 도척(도척)도 훔쳐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느 사람이 하찮은 이익을 무겁게 여겨서도 아니고, 도척이 욕심이 적어서도 아닙니다. 도척이 백 일이나 되는 황금을 훔치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걸 훔치면 손을 못쓰게 지져버리는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 법이 반드시 지켜지지 않는 다면 여느 사람도 하찮은 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훔치게 될 것입니다.

성벽 높이가 다섯 길[장] 밖에 되지 않아도 누계(누계=전국시대의 날래고 힘센 장사)가 가볍게 여겨 함부로 넘지 못하고, 태산은 백 인(인=여덟 자 정도)이나 되어도 절름발이 양치기가 그 위에 올라가 양을 칩니다. 누계가 다섯 길의 높이를 어렵게 여겼는데, 절름발이 양치기가 어찌 백 인을 쉽게 보았겠습니까. 그것은 다만 곧게 깎아지른 듯 높은 것과 비스듬하게 천천히 높아진 것의 형세가 다른 까닭입니다. 현명한 군주들이 오래도록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 막중한 권세를 유지함과 아울러 천하의 이익을 오로지 할 수 있었던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특이한 수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홀로 결단하고 꾸짖을 바를 찾아내 반드시 엄한 벌로 다스렸기에 백성들이 감히 죄를 짓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도록 힘쓰지 않고 인자한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것을 본받으려 한다면 이는 또한 성인의 길을 바로 살피지 못한 바가 됩니다.

.........무릇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세속을 초탈하고 고쳐서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없애고 바라는 바를 세워, 살아서는 존중받고 권세를 누리며 죽어서는 현명하였다는 칭송을 듣게 됩니다. 뛰어난 군주는 홀로 결단하며 권세가 신하에게 있지 않게 합니다. 그런 뒤에야 인의(인의)의 주장을 없애고 설득하는 입을 막으며 열사(열사)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자기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도 마음속으로 홀로 보고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는 인의를 내세우는 사람과 열사의 언행에 홀리지 않을 수가 있고, 안으로는 다투고 말리는 말솜씨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군주가 초연히 제 뜻대로만 움직이더라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게 되니, 이래야만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술에 상군의 법을 닦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를 꾸짖는 법을 잘 베풀면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과 신하들은 허물을 짓지 않고 죄를 면하기에 겨를이 없을 터이니, 어찌 감히 모반을 꾸밀 수 있겠습니까. 이는 바로 황제의 도가 갖춰지는 것이요, 신하를 부리는 도가 밝고 바르다 할 수 있은 즉, 비록 신불해와 한비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더 보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강 그런 내용으로 채워진 수천 자(字) 상소문이 이르자 이세 황제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하여 공자와 대신들을 벌주는데 더욱 엄격해졌고, 관리들은 백성들을 심하게 쥐어짤수록 현명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오래잖아 길을 다니는 사람들 중에 절반은 형벌을 받은 적이 있는 자들이었고, 사형당한 사람들의 주검은 날로 저자바닥에 높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관동의 변란은 갈수록 널리 퍼져 이사에게도 위기감을 키웠다. 거기다가 조고가 황제의 명을 핑계로 모든 일을 제멋대로 처리하는 것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천자가 존귀한 것은 여러 신하들이 다만 폐하의 소리를 들을 뿐이고, 그 얼굴을 뵈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자가 스스로를 이를 때도 짐(朕=조짐이란 뜻)이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폐하께서는 젊으셔서 반드시 모든 일에 두루 능통하실 수는 없습니다. 조정에 마주 앉아서 정사를 보시다가 신하들을 꾸짖거나 뽑아 쓰심에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폐하의 서투르고 모자란 곳만 들키게 됩니다.

무릇 신명(神明)한 것은 천하에 함부로 드러내는 법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궁궐 깊숙이 계시면서 법을 잘 아는 신하와 시중 몇 만 거느리고 기다리시다가, 정사가 문서로 들어오면 그때서야 그들과 의논하여 처결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대신들은 의심스러운 일을 함부로 폐하께 아뢰지 못할 것이며, 천하의 백성들은 폐하를 훌륭한 군주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조고는 이세 황제를 꿰어 궁궐 깊숙한 곳에 머무르면서 대신들과 얼굴을 맞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아무도 황제 근처에 얼씬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만 그 곁에 붙어 앉아 모든 일을 제 뜻대로 했다.

하지만 조고 같은 총신형(寵臣型)의 인간일수록 남의 눈치를 잘 살피고 일의 기미를 빨리 냄새 맡는다.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어도 자신의 권력이 정통적이 아님을 잘 알아, 승상인 이사를 언제나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갈수록 이사의 얼굴에 심상찮은 결의가 굳어가는 걸 보고 제 쪽에서 먼저 이사를 찾아와 충성스럽고도 공손한 체 말하였다.

“지금 함곡관 동쪽에 도적떼가 들고 일어나 천하가 시끄러운 것은 승상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부역을 급하게 끌어들여 아방궁이나 짓고, 개나 말 따위 쓸모 없는 것들만 모으고 계십니다. 제가 깨우쳐 드려 말리고 싶으나 미천한 환관이라 함부로 아뢰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일은 승상 같은 조정의 대신이 나서셔야 할 일인데, 어찌 아무 말씀도 아뢰지 않으십니까?”

그때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빠진 뒤라 하지만 그래도 조고처럼 간교하지는 못한 이사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덥석 조고의 손까지 잡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소. 나도 그 일을 폐하께 아뢰려 한지 이미 오래되었소.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조정에 나오시지 않고 금중(禁中) 깊숙한 곳에 머무르고 계시니, 뵈오려 해도 뵈올 수가 없었고 아뢸 말씀이 있어도 아뢸 길이 없었소.”

그러자 조고가 간이라도 빼어줄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조금도 걱정 마십시오. 승상께서 진실로 간언(諫言)을 올리시려 한다면 제가 길을 마련해보겠습니다. 폐하께서 한가로운 때를 골라 승상께 기별하여 드릴 터이니 그 때 아뢰십시오.”

이에 이사는 아무 의심 없이 조고와 헤어져 이세 황제를 마주하게 될 날만 기다렸다. 며칠 안돼 조고가 보낸 사람이 이사를 찾아와 말했다.

“낭중령께서 이르시기를 폐하께서 지금 한가로우시니 찾아뵙고 아뢸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기실 그때 조고는 이미 작은 함정을 파놓고 이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후궁들을 끼고 질탕하게 잔치를 열고 있는 곳에 이사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곳에 이른 이사가 조고를 찾아보고 황제를 뵙기를 청하자 조고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오. 먼저 가서 여쭙고 오겠소.”

그리고는 향기로운 술과 아리따운 여인들에 취해 한창 흥이 올라 있는 이세 황제에게 황송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승상 이사가 폐하께 알현을 청합니다.”

그 말에 이세황제는 짜증부터 냈다.

“승상은 어찌하여 하필이면 이런 때에 나를 찾아온 것인가? 정사에 관한 것이라면 글로 써서 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이사를 그냥 돌려보내게 했다. 조고가 여전히 천연덕스런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승상, 오늘은 아니 되겠습니다. 폐하께서 뒷날 조용히 승상의 말씀을 들을 터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하십니다.”

그 말에 이사는 별 의심 없이 금중을 나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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