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 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8월 7일 17시 29분


어떤 종말(3)

"함곡관 동쪽에 도적의 무리가 크게 일자 조정은 군사를 내어 그들을 쳐부수게 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도적 떼가 죽고 흩어졌으나 아직도 그 어지러움이 다 가라앉지는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도적들이 많이 이는 까닭은 모두 수자리 살이[戌]와 물과 뭍으로 물자를 나르는 일[漕,轉]과 여기저기 불려나가 해야하는 일[作]에 백성들이 고달프고, 그들로부터 거두는 공물과 세금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아방궁 짓는 일을 잠시 멈추시고, 사방의 수자리를 줄이시며, 백성들이 물자를 나르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옵소서. 그리하면 도적의 무리가 줄고 천하의 어지러움도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러자 이세 황제는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세 사람의 말을 받아넘겼다.

“일찍이 한비(韓非)는 말하기를 ‘요순(堯舜)은 나무를 베어다가 깎지도 않고 서까래를 만들었고, 짚으로 지붕을 이면서 처마 끝도 가지런히 잘라내지 않았으며, 질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동이에 물을 담아 마셨으니, 하찮은 문지기가 사는 꼴도 그보다 궁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우(禹)는 용문(龍門)을 뚫어 대하(大夏)를 소통시키고, 황하의 막힌 물길을 터서 바다에 이르게 하였는데, 몸소 괭이와 가래를 들고 일해 정강이의 털이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으니 종살이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들었소.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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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천하의 주인됨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엄한 법으로 아랫사람을 부려 천하를 쉽게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오. 그런데도 우(虞=舜) 하(夏=禹)는 천자의 귀한 몸이면서도 궁핍하고 고단하게 살며 천한 백성들을 위해 도리어 자신을 저버렸으니 본받을 만한 것이 무엇이겠소? 짐은 존귀하기가 만승(萬乘)의 천자이지만 거기에 어울릴 만한 누림이 없으니, 아방궁을 마저 짓고 크게 군대를 길러 짐의 칭호에 어울리게 하려는 것뿐이오.

선제(先帝)께서는 제후에서 몸을 일으키시어 마침내 천하를 아우르시었소. 또 천하가 이미 아울러진 뒤에는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쳐 변방을 안정시키고, 안으로는 크게 궁실(宮室)을 지어 득의(得意)함을 드러내셨으니, 그대들도 선제께서 남기신 공업(功業)을 익히 보았을 것이오.”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엄하게 하여 꾸짖었다.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짐이 제위에 오른 지 2년, 도적의 무리가 잇따라 일어도 그것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짐이 선제께서 하신 바를 이어서 하는 것조차 막으려 드는 것이오? 이는 위로는 선제의 은의에 보답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도 못되니, 이러고도 이 나라의 좌우 승상이고 대장군이라 할 수 있소?”

그러는 이세 황제의 얼굴에는 찬바람이라도 도는 듯하였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품고 나선 세 사람은 크게 낙담했다. 특히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인 격이 된 이사는 다급한 마음까지 들었다. 온갖 말재주를 부려 황제를 달래보려 했으나 끝내는 나머지 둘과 함께 내쫓기고 말았다.

그런데 이세 황제의 노여움은 꾸짖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 세 사람이 어전을 물러나자마자 옥리(獄吏)를 불러 명하였다.

“우승상 풍거질과 좌승상 이사, 그리고 대장군 풍겁을 잡아들여 그들의 죄를 엄히 물으라!”

이에 그들 세 사람은 미처 궁궐 문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옥리에게 잡혀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풍거질과 풍겁은 모든 일이 글러졌다고 보았다.

“장상(將相)은 죽을지언정 모욕당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이사는 달랐다. 시황제의 천하통일을 도운 공만으로도 죽음은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거기다가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하여 호해를 이세 황제로 세운 공까지 있으니 버티기만 하면 곧 죄를 벗고 전처럼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 보았다.

앞일을 자신에게 이롭게만 헤아려 살아남은 이사는 호되게 그 값을 치러야 했다. 홀로 살아남은 것을 밉살스럽게 보아서일까, 이세 황제는 하루아침에 승상에서 죄수가 되어 옥에 갇히게 된 이사를 다른 사람도 아닌 조고에게 넘겨 심문하게 하였다. 그제야 일이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꼬였음을 안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임금에게 무슨 계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인가. 옛적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였고, 은나라 주왕(紂王)은 비간(比干)을 죽였으며,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다. 그 세 사람이 어찌 충성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죽음을 면하지 못한 까닭은 그 왕들이 그들의 충성을 받을 만하지 못하여서이다.

지금 나는 지혜가 그들 세 사람보다 못하고, 이세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이나 부차보다 더하니 내가 충성하였기 때문에 죽는 것은 오히려 마땅한 일이다. 어지러운 이세 황제의 다스림이여. 지난날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제위를 차지하였으며,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자를 귀하게 썼으며, 아방궁을 짓느라 천하 백성들을 쥐어짜고 부려먹었다. 그때마다 내가 바른 말로 말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듣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무릇 옛날 훌륭한 임금들은 식사할 때도 예절을 잃지 않았고, 수레를 부리고 물건을 쓰는 데도 정해둔 개수를 따졌으며, 궁궐을 짓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조칙을 내려 어떤 일을 할 때도 비용만 들고 백성들에게 이득이 없는 일은 하지 않아 오랫동안 평온하게 천하를 다스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황제는 형제에게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고서도 그 허물을 돌아보지 않고, 충신을 죽이면서도 그 재앙을 헤아릴 줄 모르며, 크게 궁궐을 지어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그 비용을 아껴쓸 줄을 모른다. 그 세 가지 일이 함부로 저질러지고 있는 한 백성들은 결코 그의 다스림에 따르지 않으리라.

이제 반역의 무리가 천하의 절반을 차지하였건만 황제는 아직도 그 위태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조고 같이 간사한 무리를 충신으로 여기며 그 보필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도적들이 함양까지 쳐들어와 진나라를 멸망시켜 고라니와 사슴이 이 궁궐터에서 노는 꼴을 내 반드시 보게 되겠구나!”

이사가 걱정 한대로 조고의 참혹한 심문이 곧 시작되었다. 조고는 이사에게 천 번을 넘게 모진 매질을 가하며 아들 유(由)와 함께 모반한 죄를 덮어 씌웠다. 이사는 처음 펄쩍 뛰며 부인하였으나 매 앞에 장사가 없었다. 거듭되는 매질을 견뎌내지 못하고 조고가 원하는 대로 자백하고 말았다.

이사가 자살하지 않고 그 모진 고문을 견뎌낸 것은 실낱같으나마 그래도 아직 믿는 바가 있어서였다. 아무리 조고에게 홀려있는 황제이지만 그동안 세운 공을 보아서도 자신을 쉽게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것과 실제로 모반할 뜻이 없었음을 끝내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을 그는 믿었다.

이사는 그 두 가지를 황제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부서지고 찢긴 몸을 억지로 추스르고 옥중에서 붓을 잡았다.

<신이 승상이 되어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한 때만 해도 진나라의 세력은 지금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뒤 30년, 이제 진나라는 천하를 하나로 아울러 만세(萬世)를 기약하는 천자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이제 승상의 자리에서 죄수의 뇌옥(牢獄)으로 옮겨 앉아 모진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신이 못난 아들 유(由)와 함께 도적들과 내통하며 반역을 꾀했다는 말이 거짓됨은 하늘과 땅, 해와 달이 밝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 간사한 자들이 신과 폐하를 이간시키려고 꾸며 덮어씌운 모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오나 이 며칠 어두운 옥중에서 곰곰이 돌이켜보니 신에게도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그 죄를 자복(自服)하며 폐하의 밝고 어진 처분을 빌 따름입니다.

선왕의 시절 진나라의 땅은 천리를 넘지 못했고 군사도 몇십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은 변변치 못한 재주를 다하여 삼가 법령을 만들고, 지모(智謀)있는 자들에게 몰래 보석을 나눠주며 제후들을 달래게 하였습니다. 또 은밀히 군비를 갖춤과 아울러 다스림과 가르침을 가지런히 하였으며, 용감한 자에게는 벼슬을 내리고 공 있는 자에게도 벼슬과 녹봉을 넉넉히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韓)나라를 위협하고 위(魏)나라를 약하게 만들었으며,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를 깨뜨리고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를 평정하였습니다. 끝내 여섯 나라를 모두 아우르고 그 왕들을 사로잡은 뒤, 우리 진나라의 임금을 천자로 세웠으니 그게 신의 첫 번째 죄입니다.

그 때 이미 우리 진나라의 영토가 드넓지 않은 것이 아니었건만, 더욱 북쪽으로 밀고 나아가 호(胡)와 맥((맥,학))을 멀리 쫓아내었고, 남쪽으로도 백월(百越)을 평정하여 제국의 강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신은 그 일을 말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나 말리지 않았으니 이는 신의 두 번째 죄라 할 만합니다.

대신들을 존중하여 그들로 하여금 맡은 일과 받고 있는 녹봉에 만족케 하니 임금과 신하가 가깝고도 믿음이 굳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죄가 된다면 저의 세 번째 죄목을 이룰 것입니다. 사직(社稷)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엄숙히 받들어 황제께서 밝고 어지심을 밝힌 것은 신의 네 번째 죄가 될 것이요, 눈금을 고치며 나라 안의 되[升]와 자[尺]를 모두 같게 하여 우리 진나라의 엄정함을 보인 것은 신의 다섯 번째 죄가 될 것입니다.

수레 두 대가 엇갈려 갈 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사방으로 이어지게 하여 순수(巡狩)를 편안케 하고 황제의 위엄을 떨치게 한 것도 죄가 된다면 여섯 번째 죄를 이룰 것입니다. 또 형벌을 낮추고 세금을 덜어주어 황제께서 민심을 얻게 함으로써 모든 백성들이 죽어도 황제의 은혜를 잊지 못하도록 한 것도 일곱 번째 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사는 신하된 몸으로서 이토록 많은 죄를 지었으니, 이미 오래 전에 죽어 마땅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신을 벌하지 않으시고 지금에 이르도록 있는 힘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다만 폐하께서 아직도 이 늙은 신하를 가련히 여기신다면 다시 한번 굽어살펴 주시기를 빌 따름입니다. >

대략 그와 같이 쓰기를 마친 이사는 그 글을 옥리에게 주며 황제에게 올려주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이사의 주변은 조고가 풀어놓은 눈과 귀가 쫙 깔려 있었다. 그 옥리도 그들 중의 하나라 이사의 글을 받기 바쁘게 조고에게 갖다 바쳤다.

글을 다 읽고 난 조고가 새파랗게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죄인이 어찌 폐하께 감히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는가? 찢어 없애버려라!”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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