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03>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1월 8일 18시 14분


關中으로(2)

어이없이 한 싸움을 내준 패공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한번 싸움을 걸어보았다. 20리나 쫓겨 가 겨우 수습한 군사를 낙양 동쪽 벌판으로 되몰아 보았으나 승패는 여전히 뜻 같지 못했다. 그 사이 진세(陣勢)까지 벌이고 기다리던 진군(秦軍)이 매섭게 받아치는 바람에 또 한번 적지 아니한 군사만 꺾이고 말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적의 장수가 누구며 적병은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면서 하루아침에 두 번이나 싸움에 졌으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오.”

이번에는 30리나 쫓긴 뒤에야 겨우 군사를 멈춘 패공이 탄식하듯 말했다. 아침 내내 후군(後軍)에 남아 멀리서 말없이 싸움을 살피고만 있던 장량이 가만히 대답했다.

“이게 바로 손자(孫子)가 말한 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을 이길 수 있다[지피지기 백전백승]’ 라는 것입니다. 적장도 모르고 적세(敵勢)도 모르면서 어찌 싸워 이기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자방이 헤아리기에는 일이 어떻게 된 것 같소?”

“아마도 진군은 소문보다 빨리 이곳 낙양 쪽으로 전력(戰力)을 집중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진나라가 수비를 함곡관에 집중하기로 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오?”

“이미 말씀드렸듯이, 원래도 함곡관은 관중(關中)의 대문 같아 진나라가 굳게 지키는 곳이었는데, 이제 다시 마음먹고 군사를 집중하였으니 그리로 관중에 들어가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애써 낙양에 모인 진나라 대군을 쳐부순다 해도 다시 함곡관에 이를 때까지 두텁게 펼쳐진 적진을 피로 씻으며 지나가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도 아직 함곡관의 천험(天險)이 남아있으니, 무슨 수로 함양에 이르러 진나라를 쳐 없앨 수 있겠습니까? 잠시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 세력을 기르면서 달리 길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싸우는 쪽을 은근히 바랐던 장수들도 그때는 모두 풀이 죽어있었다. 아무도 장량의 그와 같은 말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 패공도 장량의 말을 듣지 않다 낭패를 본 터라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물러난다면 어디로 물러나는 것이 좋겠소?"

한참 만에 패공이 쓰게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러자 장량이 미리 생각해둔 게 있는 듯 대답했다.

“멀지 않은 환원산(환轅山)으로 물러나 적병의 급한 추격을 따돌린 뒤에 양성(陽城)으로 돌아가면 어떻겠습니까? 양성에서 잠시 쉬면서 형세를 살피며 기다리다가 보면 다시 군사를 움직여 볼만한 때가 올 것입니다.”

“양성이라면 형양(滎陽)과 성고(成皐)의 곡창에서 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옛 한나라의 중심이라 남은 그 백성들에게 크게 의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 사이 패공의 부장(部將)처럼 된 한왕(韓王) 성(成)도 곁에서 그렇게 장량을 거들었다. 다른 장수들도 군말이 없어 패공은 장량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패공은 먼저 환원산으로 군사를 물려 승세를 타고 추격해오는 진군(秦軍)을 뿌리치고, 그곳에 조금 남아있던 한왕과 장량의 세력을 마저 거둬 들였다. 그리고 다시 길을 동쪽으로 잡아 아직은 패공의 세력 아래 있는 양성으로 돌아갔다.

양성에서 며칠 쉬는 사이에 장량은 사람을 사방에 풀어 주변 형세를 살피게 했다. 오래잖아 서남쪽으로 간 간세(奸細)들에게서 쓸만한 전갈이 들어왔다.

“남양(南陽)은 땅이 넓고 기름지나 머물러 사는 이가 적어 비어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양태수 여의(呂의)가 지키고 있으나 많지 않은 병사를 여기 저기 흩어놓아 날랜 기병(騎兵) 3000이면 그들이 모이기 전에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서 군사를 내어 남양을 거두어들이도록 하십시오.”

장량이 그 말을 패공에게 전하자 패공은 그날로 관영(灌영)에게 기병 3천을 주며 남양군을 거둬들이게 했다.

관영이 남양 땅을 무인지경 휩쓸 듯 하니, 놀란 군수 여의가 군사를 있는 대로 긁어모아 주현(주縣) 동쪽에서 관영을 맞았다. 하지만 장수로서 여의는 관영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관영이 전군을 휘몰아 치열하게 부딪혀 오자 여의가 이끈 진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물어졌다.

좌우의 부장들이 힘껏 싸워 겨우 목숨을 건진 여의는 가까운 완성으로 쫓겨들었다. 뒤따라온 관영은 성을 물샐틈없이 에워싼 뒤에야 패공에게 이긴 소식을 보냈다.

낙양 동쪽 싸움에서 두 번이나 거듭 지는 바람에 시무룩해 있던 패공은 그 소식에 다시 기가 살아났다. 곧 양성에 있는 군사를 모조리 긁어모아 완성으로 달려가려 했다. 역이기가 그런 패공을 가만히 찾아보고 말했다.

“이곳 양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양적(陽翟) 형양(滎陽)등도 그냥 버려서는 아니 될 귀한 땅입니다. 전에 스스로 원한대로 한왕 성에게 이 땅을 맡겨 필요할 때는 언제든 우리와 호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까?”

“잘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한왕에게 부장(部將) 몇과 약간의 군사를 남겨주어 이 땅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패공은 그렇게 대답하고 한왕 성을 불러들였다. 군사 5000과 칠대부(七大夫)보다 높은 작위의 장수 일곱을 한왕에게 남겨주며 양적(陽翟)에 자리잡고 양성과 형양, 성고를 아울러 다스리게 했다. 그때 남겨진 군사들은 대개 옛 한나라 백성들이었고, 장수들도 한왕이 원래 데리고 온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장량만은 패공을 따라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틀 뒤 패공이 전군(全軍) 3만을 이끌고 완성에 이르니 관영은 아직도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끌고 있는 게 기병인데다 머릿수도 많지 않아 성을 들이치지 못하고 다만 남양군수 여의와 그 군사들을 성안에 가둬놓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관영에게 지고 성안으로 쫓겨든 적이라고 얕본 패공이 그 날로 공성(攻城)을 서둘렀다. 하지만 완성의 성벽은 높고 두터웠으며, 안에서 지키는 여의와 그 군사들도 힘을 다해 맞섰다. 거기다가 성안 백성들까지 여의를 편들어 굳게 지키니, 며칠을 두고 들이쳐도 패공의 군사들만 상할 뿐 성은 꿈적도 않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공연히 다급해진 패공이 다시 서둘기 시작했다.

“이 되잖은 성 하나에 한없이 발목이 잡혀 있을 수 없소. 차라리 완성을 버려두고 바로 서쪽으로 쳐들어갑시다. 함곡관을 깨고 함양만 둘러엎으면 그걸로 천하의 형세는 정해지는 것이오. 이까짓 남양의 성 하나겠소!”

닷새가 되어도 완성이 떨어지지 않자 장수들을 군막에 부른 패공이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펄쩍 뛰듯 나서서 말렸다.

“패공께서는 급히 함곡관에 들려 하시지만 이는 결코 서둘 일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겪으셨듯이 아직 진나라 군사는 많고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지세는 험준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지금 완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나가셨다가는 등과 배로 적을 맞게 되기 십상입니다. 뒤에서 완성에 남아있던 적군이 공격하고 앞에서는 강한 진군이 막아선다면 이보다 더 위태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언제까지 이곳에 발이 묶여 있어야 한단 말이오?”

패공이 답답한 듯 그렇게 물었다. 지난번 낙양 싸움 때의 낭패 때문에 삼가고는 있어도 급한 마음을 숨기지는 못했다. 장량이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왕에 에움을 풀고 떠나려 하셨으니, 그걸 계책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오?”

“패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에움을 풀고 군사를 물렸다가 밤중에 가만히 다른 길로 되돌아와 저들의 얼을 빼놓는 것입니다. 깃발을 바꾸고 복색을 달리한 뒤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세 겹 네 겹 완성을 다시 에워싸고 북소리와 함성으로 겁을 주십시오. 그러잖아도 이 며칠 힘든 싸움으로 지쳐있는 성안 군민(軍民)들이라, 새벽잠에서 깨어나 다시 그 광경을 보고 그 소리를 듣게 되면 결코 오래 배겨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패공이 들어보니 지나치게 섬세한 데는 있지만 써 볼만한 계책 같았다. 이에 장량이 일러준 대로 따랐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패공의 군사들이 물러나자 겨우 마음 놓고 잠이 들었던 남양태수 여의는 성밖에서 나는 북소리 고함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한달음에 성벽위로 달려가 보니 전날과는 깃발과 복색을 달리하는 군사들이 다시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세 겹 네 겹으로 에워싼 게 세력은 오히려 전날보다 몇 배나 커 보였다.

얼마 전에는 주현 동쪽에서 관영에게 기병전(騎兵戰)으로 호되게 당한데다, 다시 그 닷새를 농성전(籠城戰)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여의였다. 겨우 한시름 놓았다 싶었는데 밤사이에 전날보다 훨씬 더 머릿수 많고 기세 좋은 적병에게 에워싸이고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도적의 무리는 점점 사납고 거세어지는데, 원군(援軍)은 오지 않고 곡식과 말먹이는 다되어 가는 구나. 이제는 틀렸다. 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욕을 면하는 편이 옳겠다!”

여의가 그러면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곁에 있던 사인(舍人) 진회(陳恢)가 칼을 뺏어 던지며 여의를 말렸다.

“죽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태수께서는 진정하시고 먼저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제가 보니 기치와 복색이 달라졌으나, 지금 성을 에워싼 군사는 여전히 패공 유방의 군사들입니다. 듣기로 패공 유방은 사람됨이 너그럽고 어진데다 품은 뜻이 커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초 회왕도 그를 장자(長者)로 보아 포악한 항우를 제쳐놓고 그에게 특히 진나라 정벌을 맡겼다는 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저를 보내 패공 유방을 달래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태수께서 욕됨을 면하고 군민(軍民)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그 뒤라도 늦지 않습니다.”

여의도 그 말을 옳게 여겨 잠시 죽기를 미루었다. 진회의 뛰어난 식견과 언변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패공에게 보내보기로 했다.

여의로부터 약간의 예물과 신표(信標)를 받은 진회는 가만히 성벽을 넘은 뒤에 패공의 진채를 찾아갔다.

“나는 남양태수가 보낸 사자이니, 패공을 만나게 해주시오. 여기 예물과 신표가 있소!”

진회가 그렇게 소리치며 진채로 다가가니 군사들이 그를 살피고 뒤진 뒤에 패공에게로 끌고 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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