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우리 초군(楚軍) 한 갈래는 벌써 무관을 넘어 관중으로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더 우물거리다가는 그들에게 공을 모두 뺏기고 만다. 우리도 어서 이 성을 떨어뜨리고 함곡관을 넘어 관중으로 들어가자. 함양을 차지하고 무도한 진나라의 명줄을 끊어놓는 일은 우리 강동(江東) 남아들의 공으로 삼자!”
항우가 그렇게 외치며 앞장서 싸움을 돋우었으나 섬성(陝城)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성을 지키는 진나라 장수도 예사내기가 아니었다.
“저들은 항복한 우리 군사 20만을 산 채 땅에 묻은 흉악스러운 놈들이다. 항복해도 죽을 바에야 끝까지 싸우다 죽자. 아직도 부근에는 우리 진나라 세력이 많이 남아있어 우리가 잘 버티면 머지않아 반드시 구원이 올 것이다. 더구나 새 황제께서는 나라를 가다듬고 대군을 보내 함곡관을 지키게 하셨다고 한다. 이곳은 함곡관의 잇몸 같은 곳이니, 대군이 이른 함곡관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순망치한],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어찌 우리 섬성이 깨어지는 것을 뒷짐 지고 구경만 하겠느냐?”
군민(軍民)들을 모아놓고 그렇게 기운을 북돋우니, 성안의 6만 군민들은 겁내지 않고 힘을 다해 맞섰다. 초나라 군사들이 멀리서 몰려오면 화살비를 퍼붓다가 성벽 아래로 다가들면 돌과 통나무를 우박처럼 쏟아냈다. 구름사다리를 대면 기다란 막대로 밀어내고, 갈고리 달린 밧줄을 걸면 밧줄을 잘라 버렸다.
그 바람에 항우는 닷새가 지나도 군사만 잃고 성벽 위에 한번 뛰어올라 보지도 못했다. 거기다가 계절은 북녘의 한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개가 따뜻한 강남(江南)에서 나고 자란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그 추위만도 괴롭기 짝이 없었다. 부근에는 넓고 기름진 들이 없어 형양(滎陽) 성고(成皐) 지방에서 날라 와야 하는 군량도 날이 갈수록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항우를 분통터지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양(平陽) 현령이 대군을 이끌고 와 안읍(安邑)을 되찾아 갔습니다. 지금은 인근의 군세를 모아 이곳 섬성을 구하러 오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고 합니다.”
정탐 나간 군사들로부터 그 같은 말을 들은 항우는 곧 경포를 불렀다.
“당양군(當陽君)은 지금 곧 군사 5만을 이끌고 안읍으로 가시오. 가서 안읍성을 되찾고, 달아나는 적을 뒤쫓아 북쪽으로 멀리 평양성까지 짓밟아 버려야 하오. 그런 다음 성벽은 허물어 버리고 우리에게 맞선 자들은 늙고 젊고를 가리지 말고 모조리 죽여 버리시오. 이미 너그러움으로 저들을 달래기는 틀렸으니, 두려움으로 억누르는 수밖에 없소. 감히 우리에게 맞서면 20만이 아니라 100만이라도 묻어버릴 수 있음을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시오!”
그리고 다시 환초(桓楚)와 용저(龍且)를 불러 말했다.
“장군들은 각기 군사 3만을 이끌고 하남(河南)으로 내려가 남아있는 진나라 세력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라. 섬성이 이렇게 굳건히 버티는 것은 부근에 적잖게 남아있는 저희 세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으로 낙양에서 올 원군이 없고, 북으로 안읍 평양이 깨어진 데다, 다시 남양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성안의 적들도 마음이 바뀔 것이다!”
그래놓고 자신은 남은 군사로 섬성을 에워싸고만 있으니, 거기서 다시 여러 날이 허비되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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