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42>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3일 18시 38분


석 줄만 남은 法 ⑫

이른 바 <약법삼장(약법삼장)>에서 남을 다치게 한 자와 도둑질한 자에게 내릴 벌을 뚜렷이 밝히지 않은 데는 까닭이 있다. 사람을 다치게 해도 곡직(曲直)이 있고, 도둑질에는 많고 적음이 있어 미리 그 벌을 정해 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패공은 자기 사람을 진나라 관원들과 함께 보내 인근의 현(縣)과 향(鄕), 읍(邑)을 돌아다니며 모든 진나라 법이 폐지되고 다만 석 줄만 남게 된 일을 알리게 했다. 그 말을 들은 진나라 백성들은 몹시 기뻐했다. 다투어 소와 양을 잡고 술과 음식을 마련해 패공의 군사들에게 바치려 몰려 왔다.

하지만 패공은 사양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창고에는 곡식이 많아 군량으로 모자람이 없고, 고기와 술도 먹고 마시기로 들자면 반드시 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가져오신 뜻은 고마우나 고단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기 원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 주십시오. 가서 이웃끼리 나눠 먹고 마신다면, 바로 저희들이 먹고 마신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더욱 감격하며 오직 패공이 진나라 왕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패공 쪽에서 보면 지난 한 해의 그 어떤 싸움에서 얻은 것보다 눈부신 성과였다.

그때 패상에는 추씨(P氏) 성을 쓰는 서생(書生) 하나가 유세가(遊說家)를 자처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패공 유방이 관중으로 들어와 함양을 차지하고서도 패상으로 물러나 있자 눈여겨보다가, 관중의 민심을 거둬들이는 것을 보고 때가 왔다 여겼다. 가만히 패공을 찾아와 가장 눈 밝고 헤아림 깊은 체 말했다.

“관중의 부유함은 천하의 열배가 되고, 지형은 굳고 험해 지키기에 아주 이롭습니다. 지금 듣자 하니 진나라 장수 장함이 항복하자 항우는 그를 옹왕(雍王)으로 세워 관중의 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만약 항우가 당장이라도 장함을 데리고 입관(入關)한다면 아마도 패공께서는 이곳의 왕이 되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급히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보내 원래 그곳을 지키던 진병(秦兵)들과 더불어 굳게 관문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 어떤 제후의 군사도 함곡관을 넘지 못하게 하신 뒤에 차차 관중에서 군사를 뽑고 병력을 키워 그들을 막아내면, 패공께서는 온전히 관중의 왕이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설에는 그 서생이 추씨 성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견 좁은 서생’이란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추(P)란 잉어과에 속하는 작은 민물고기로서 소견 좁은 사람이란 뜻이 있는데, 남을 욕하거나 스스로를 낮추어 말할 때 추생(P生)이라 쓴 예가 있다.

하지만 추생이 찾아온 것도 패공의 시운(時運)인 듯했다. 모처럼 굳힌 천하 쟁패의 큰 뜻도 한 번 불 지펴진 욕심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추생의 그 같은 말에 넘어간 패공은 곧 군사 한 갈래를 함곡관으로 보내 관문(關門)부터 굳게 닫아걸게 했다.

원래 함곡관을 지키던 진나라 장졸들은 등 뒤에서 초나라 군사들이 나타나자 황당해 했으나, 그들도 풍문은 듣고 있었는지 크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진왕 자영이 항복하면서 패공에게 바친 병부(兵符)를 보고는 곧 초나라 군사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함곡관을 지켰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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