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2>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30분


鴻門의 잔치 ⑩

“그렇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우러르는 옛 초나라의 명장(名將) 항연(項燕)의 아들이요, 방금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키는 상장군 항우의 숙부 되시는 분이 이 하찮은 사람의 형이 되지 못하신다면 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지난날 무신군(武信君·항량)께서 살아계실 때 저와 상장군은 형제의 의를 맺은 적도 있습니다. 형과 아우를 굳이 정하지는 않았으나, 저는 이미 공의 조카와 형제가 된 적도 있으니 공께서 제 형이 된다 해서 망발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패공 유방이 다시 그렇게 자신을 낮추었다. 항백은 그래도 사양을 거듭했다. 그러자 패공은 말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저와 혼(婚·며느리의 아버지)이나 인(姻·사위의 아버지)으로 맺어질 수는 없겠습니까? 제게는 아들과 딸이 있고 다행히도 아주 못생기거나 크게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만약 공께 아드님이 있다면 제 딸에게 빗자루와 쓰레받기[기추]라도 들려 바칠 것이오, 따님이 있다면 아들을 보내 공의 말고삐라도 잡게 하겠습니다.”

사정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한가로운 소리 같지만, 말하는 패공으로서는 절박하기 짝이 없었다. 항우를 달래기 위해서는 항백의 환심부터 사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패공이 너무도 간절하게 매달리자 어지간한 장량도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 두 사람 사이에 함부로 끼어들지 못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졸리다 못한 항백이 마침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아니 될 게 없지요. 좋습니다. 원래 하상(下相)에서 거느리던 처자는 전란 통에 모두 죽어 새로 얻은 자식이 아직 어리나, 패공께서 정히 바라신다면 혼인(婚姻)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히 청하지는 못하였으나 참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자 패공은 더욱 좋은 술과 안주를 내 오게 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축수(祝壽)와 더불어 혼인 약조를 거듭 다짐하더니, 마침내 처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두 집안은 혼인으로 맺어졌으니, 흥망성쇠도 아울러 얽히게 되었소. 그런데도 공께서는 소매에 두 손을 넣고 사돈인 내가 당하는 화를 구경만 하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울 일이 있으면 마땅히 도와야지요. 제가 무얼 해야 하는지 가르침만 내려 주십시오.”

항백이 뻔히 짐작하면서도 짐짓 그렇게 대답했다. 패공은 그제야 진작부터 항백에게 당부하고 싶던 말을 털어놓았다.

“저는 관중으로 들어온 뒤 터럭만한 물건도 사사로이 취한 적이 없고, 아름다운 여인도 감히 가까이 한 바 없습니다. 관리와 백성들의 장부를 정리하고 궁궐과 창고를 봉하여 오직 항(項)상장군께서 관내(關內)로 들어오실 날만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시기하는 무리의 모함으로 상장군의 의심을 받게 되니 실로 괴롭습니다.”

패공은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천연덕스레 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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