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5>卷三.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33분


鴻門의잔치 ⑬

“지난날 무신군(武信君)께서 살아계실 때 장군과 저를 형제의 의로 묶어 주신 바 있습니다. 이제 오래 떨어져 지낸 아우가 문안 올립니다. 형님께서는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패공이 그러면서 비굴해 보일 만큼 깊숙이 항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범증을 비롯한 항우 편 사람들은 그런 패공에게 비웃거나 역겨워하는 눈길을 보냈고, 사정이 절박함을 잘 아는 장량과 항백도 무참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항우는 달랐다. 타고난 무골(武骨)인 그는 패공의 그와 같은 솔직한 복종의 의사표시에 오히려 호감이 가는 눈치였다.

“나이 어린 할아비는 있어도 나이 어린 형은 없다 했소. 돌아가신 숙부께서 의좋게 지내란 뜻으로 우리에게 내리신 분부를 패공께서는 너무 중하게 여기신 듯하오. 스무 살 넘게 어린 내게 형이라니 당치도 않소.”

말로는 그렇게 겸양을 드러냈지만, 얼굴을 보아서는 나이 어린 형 노릇 하는 게 별로 싫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형님께서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군신(君臣) 사이에 무슨 나이가 있겠습니까? 저를 아우로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다만 황송할 따름입니다.”

패공이 이번에는 스스로 자신을 그의 신하로까지 낮춰 한 번 더 항우의 속을 풀어준 뒤에 다시 천연덕스레 이어갔다.

“신(臣)은 장군과 더불어 힘을 다해 진나라를 쳐 없애려 하였던 바, 장군께서는 하북(河北)에서 싸우시고 신은 하남(河南)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 힘들여 진나라의 주력(主力)을 쳐부수고 계신 사이에, 신은 비어있는 하남을 거쳐 뜻 아니 하게 먼저 관중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요행 진나라를 무찌르고 그 항복을 받게 된 신은 함양의 부고(府庫)를 봉하고 장적(帳籍)을 간수하며 오직 장군께서 빨리 입관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이렇게 장군을 뵈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소인배의 참소가 있어 장군과 신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었으니 실로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패공이 그렇게 말을 마쳤을 때 이미 항우의 속은 거의 풀려 있었다. 그러나 패공의 하소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흥건히 고인 두 눈으로 항우를 우러러보며 다시 탄식처럼 덧붙였다.

“무신군(武信君)께서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함께 피눈물을 흘리며 보수(報讐)를 다짐하던 우리 형제가 어쩌다 이리 되고 말았습니까? 차라리 몇 달 진나라의 항복이 늦어지더라도 이와 같이 장군과 길을 나누어 와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성양(城陽)을 우려 빼고 복양(복陽) 동쪽에서 진군(秦軍)을 크게 무찌른 뒤, 다시 옹구(雍丘)에서 이유(李由)를 목 벨 때처럼 장군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함께 싸우며 함곡관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의심으로 철석같이 굳어있던 항우의 심사는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때까지 패공 유방을 미워하고 성낸 일이 오히려 미안해져 해서는 안 될 소리까지 하고 말았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