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64>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39분


鴻門의 잔치(22)

“나갈 때는 셋이었는데 어찌하여 혼자만 돌아오시오?”

항우가 진평을 제쳐놓고 장량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장량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패공께서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시어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다만 신(臣) 장량으로 하여금 삼가 대왕과 아부(亞父)께 예물을 올려 술자리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불충과 결례의 죄를 빌어 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패공에게서 받은 예물을 꺼내 바쳤다.

“이 백벽(白璧) 한 쌍은 대왕께 두 번 절하며 바쳐 올리라 하셨고, 이 옥두(玉斗) 한 쌍은 대장군께 또한 두 번 절하며 바치라 하셨습니다.”

아부나 대장군은 모두 범증을 가리키는 말이다. 범증은 장량이 혼자 들어올 때부터 험상궂은 눈길로 살피고 있었으나 항우는 아직도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백벽을 바치는 장량에게 태평스레 물었다.

“그럼 패공은 어디 계신가?”

“대왕께 아직 패공을 몹시 꾸짖는 마음이 남아있으시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시며 홀로 패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지금쯤은 그곳 저희 진채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자 항우는 아무 말 없이 장량이 바치는 백벽을 받아 앉은 자리 위에 놓았다. 언뜻 패공의 그 같은 움직임이 좋지 않은 예감으로 다가왔으나, 이미 진채에 이르렀을 것이란 장량의 말이 묘하게 힘을 빼놓았다. 뒤쫓아야 미치지 못한다, 이미 늦었다―아마도 그런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량은 다시 옥두 한 쌍을 받들어 범증에게 바치고 두 번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형산 백옥으로 깎은 이 술잔[옥두]은 술의 독기를 없애고 냉온을 조절한다 하옵니다. 아부(亞父)께서는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그렇게 축수하는 장량의 말이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워 범증에게는 이죽거리는 듯한 느낌까지 준 듯했다. 이번에는 범증의 백발이 올올이 곤두서고 낯빛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옥두를 받아 앉은 자리 앞 땅바닥에 팽개치듯 놓는 그의 두 손도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범증도 맞대놓고 항우를 꾸짖을 수는 없었다.

“에이, 덜떨어진 아이놈[수子]과는 더불어 큰일을 꾸밀 수가 없구나! 뒷날 우리 대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틀림없이 패공일 것이다. 장차 우리는 모두 그의 포로가 되고 말리라!”

그런 외침과 함께 칼을 뽑아 땅바닥에 놓인 옥두를 내려치면서 죄 없는 항장(項莊)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범증이 속으로 꾸짖고 있는 것은 항우였다.

죄 없기는 항장과 마찬가지인 옥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부수어지면서 그러잖아도 위태롭게 이어가던 술자리의 흥취는 산산조각이 났다. 항우가 무연한 얼굴로 일어나고, 다른 장수들도 그 뒤를 따라 잔치는 그 길로 파하고 말았다.

한편 그 무렵 패상의 진채는 패상의 진채대로 좀체 보기 드믄 패공의 진노로 얼어붙어 있었다. 패공은 진채로 돌아오자마자 좌사마(左司馬) 조무상을 잡아오게 했다. 그리고 선 채로 목을 베 군문에 내걸게 하고도 한동안이나 두 눈에서 타오르는 듯한 불길을 거두지 못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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