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97>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6일 18시 28분


맞바람(8)

“패왕은 내게 교동왕이 되어 즉묵(卽墨)에 도읍하라 이르셨소. 그런데 또 승상 전영은 나더러 임치(臨淄)로 와서 전처럼 제나라 왕 노릇을 하라는구려. 힘이 약하고 거느린 군사가 적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알 수가 없소.”

전불(田불)의 이 같은 물음에 곁에 있던 신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지금 항왕(項王)의 힘과 기세는 천하에서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성격이 포악하여 그 뜻을 거스르고는 살아남기 어려우니 대왕께서는 마땅히 즉묵으로 가셔야 합니다. 임치로 가셨다가는 반드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실 것입니다.”

이에 전불은 전영에게서 도망치듯 자기 봉지로 달아났다. 그 소식을 들은 전영은 몹시 화가 났다. 곧 대군을 휘몰아 전불을 뒤쫓았다.

패왕 항우는 멀리 팽성에 있고, 전불은 원래가 남의 힘에 세워진 왕이라 거느린 군사가 많지 않았다. 바닥부터 세력을 다져 제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는 전영을 그런 전불이 당해낼 길이 없었다. 싸움이랄 것도 없이 쫓기다가 도읍으로 정해준 즉묵 땅에 이르러 마침내 전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전불은 제 백성과 제 나라를 버리고 초나라의 꼭두각시 임금 노릇이나 하려 했다. 거기다가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우리 군사에게 맞서기까지 했으니 임금 노릇은커녕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전불을 죽여 그 어리석음을 벌함과 아울러 천하를 제멋대로 나눈 항우의 미련스럽고 포악함을 널리 밝히자!”

전영은 그러면서 전불을 죽이게 했다. 한때는 왕으로 섬겼고, 사사롭게는 친형보다 더 우러르고 따랐던 종형 전담의 아들 되는 전불이었다.

제왕(齊王) 전도가 초나라로 쫓겨가고 교동왕 전불이 죽자 패왕 항우가 셋으로 나누었던 제나라 땅 가운데 둘이 전영의 손 안에 들어왔다.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땅이 북쪽에 치우쳐 있는데다 세력이 미약해 말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자 전영의 장수들이 나서서 권했다.

“전가가 죽고 전불이 죽어 전건(田建)으로부터 이어오는 옛 제나라 왕통과 전담(田담)에서 시작된 새로운 제나라의 왕통이 모두 끊어진 셈입니다. 이제 승상께서 왕위에 오르시어 우리 제나라를 다시 일으키시고 이끄실 때입니다.”

전영도 은근히 기다리던 참이라 한번 사양하는 법도 없이 장수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제나라 왕위에 올라 전도와 전불의 땅을 아울러 다스렸다. 하지만 제북에 전안이 남아있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때 전영의 신하 하나가 묘한 꾀를 내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팽월을 거두어 쓰시지 않으십니까? 팽월이라면 제북왕 전안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팽월의 이름은 전영도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근황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팽월이라면 거야택(巨野澤)에서 도둑질하던 그 팽월 말인가?”

“그러나 지금은 만 명이 넘는 무리를 거느리고 산동의 한 갈래 만만찮은 세력을 이끄는 우두머리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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