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08>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19일 18시 26분


대장군 韓信(7)

“백성들은 항왕(項王)을 가깝게 여겨 따라주지 않고, 다만 그 위세에 겁먹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름은 패자(覇者)이나 실상은 천하의 인심을 모두 잃었으니 항왕의 굳셈을 여림으로 만들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왕께서는 항왕이 해온 그 같은 짓을 거꾸로 뒤집듯 해오셨습니다. 천하의 용맹하고 어진 자들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시니, 쳐 없애지 못할 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성읍(城邑)을 모두 공 있는 신하들에게 나눠 봉해준다면 마음으로 따르지 않을 신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의로운 군사들로 하여금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장사(壯士)들을 뒤따르게 한다면, 그 앞을 누가 감히 막아설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저 삼진(三秦)의 왕 장함(章邯)과 사마흔(司馬欣), 동예(董예)는 본디 모두가 진나라 장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진나라 자제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여러 해 동안 죽거나 달아나 없어진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군사들은 속여 제후에게 항복하게 하고 신안(新安)으로 왔는데, 항왕은 그렇게 항복해온 진나라 사졸 20만을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오직 장함과 사마흔과 동예 세 사람만 살아남았으니, 죽은 진나라 사졸의 부형(父兄)들은 그들 셋을 원망하여 통한(痛恨)이 골수에 스몄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힘으로 밀어붙여 그들 세 사람을 삼진의 왕으로 세웠습니다만 진나라 백성들 가운데 그들을 좋아하고 섬기려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무겁고 어두운 마음으로 한신의 얘기를 듣던 한왕도 거기까지 듣자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한신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무관(武關)을 넘어 관중으로 드신 뒤에는 터럭만큼도 백성들을 해치신 적이 없으셨으며, 진나라의 가혹한 법(法)을 폐지하고 삼장(三章)의 법만을 남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진나라 백성들 가운데 대왕께서 관중의 왕이 되시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또 일찍이 제후들 가운데 가장 먼저 관중(關中)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된다는 약조가 있었던 만큼, 대왕께서 마땅히 관중의 왕이 되셔야 했습니다. 관중의 백성들도 모두 그 일을 알고 있는데, 대왕께서 항왕 때문에 마땅히 차지해야할 왕위를 잃고 한중(漢中)으로 들게 되시니 진나라 백성들 치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쳐들어가신다면, 저 삼진의 땅은 격문 한 장으로 평정될 것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말을 마치자 한왕은 매우 기뻐하며 늦게 만나게 된 것을 한탄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다른 장수들도 그 밝고 바른 식견에 감탄하며 한신을 전과 달리 보게 되었다. 거기다가 동쪽으로 쳐들어가자는 한신의 주장은 그 무렵 모든 한나라 장졸들이 부르는 애절한 노래와도 같은 것이어서 더욱 그들의 호감과 믿음을 샀다.

그런데 ‘사기’의 ‘한신 노관 열전(韓信 盧관列傳)’에 보면 나중 한(韓)나라 왕이 된 또 다른 한신(韓信)이 한중에서 그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아마도 회음후(淮陰侯) 한신과 이름이 같아 무슨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한왕(韓王) 신(信)은 장량이 세운 장수로서, 그때 한중으로 따라 들어간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큰일을 한왕 유방과 마주 논의하여 그 대군을 움직일만한 자리에 있지는 못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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