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10>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21일 19시 55분


대장군 韓信(9)

“대왕께서는 이 한신이 대왕의 장졸들보다 한달이나 늦게 한중으로 들어왔음을 알고 계십니까? 그때 신(臣)은 대왕의 자취를 더듬어 두현(杜縣)까지는 따라갔으나 식(蝕) 골짜기에 이르러 보니 잔도는 이미 모두 불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근을 헤매며 파촉 한중으로 들어갈 길을 찾게 되었는데 폐구(廢丘)를 지나 진창(陳倉)에 이르도록 서쪽으로 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산관(大散關)에 이르러 근처에 있다는 고도현(古道縣)이란 땅이름을 듣자 문득 짚이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한왕 유방이 자신도 모르게 한신의 애기에 빨려들어 물었다.

“잔도가 크게 열리기 이전에도 파촉(巴蜀) 한중(漢中)은 진(秦)나라의 다스림을 받았고, 사람과 물자의 왕래도 빈번하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에도 그리로 드나들 길은 있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잔도보다 길이 험하거나 에돌아도 반드시 옛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도(古道)란 바로 옛길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신은 고도현에 바로 그 옛길이 있으리라 믿고 그곳 지리에 밝은 토박이들에게서 한중으로 드는 옛길을 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그럴 법하오.”

“오래잖아 아직도 그길로 남정(南鄭)을 드나든다는 사냥꾼 하나를 찾았습니다. 신은 지녔던 은덩이로 그를 사서 길라잡이로 삼고 대왕의 뒤를 쫓았습니다. 함양(咸陽)에서 떠나기로 한다면 길을 배나 도는 셈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옛길은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군이 지나기에는 오히려 잔도보다 나을 것 같은 길이었습니다. 신은 뒷날 반드시 쓰일 데가 있을 것 같아 그 길을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두었다가 나중에 이렇게 비단에 옮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신은 처음 한왕 유방을 찾아올 때부터 장수가 되어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갈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몇 달이나 연오(連敖)니 치속도위(治粟都尉)니 해서 하찮은 대접을 받았으니 그 실망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당장 한왕이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대산관이 그 끝에 있으니 그것은 어떻게 하겠소? 이는 진나라가 서쪽에서 오는 적에 대비하여 세운 관(關)이라 진나라 장수였던 옹왕(雍王) 장함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거기에 대군을 보내 막고 있으면 우리가 무슨 수로 삼진의 땅을 밟는단 말이오?”

한왕이 그렇게 걱정스레 물었다. 한신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것은 장함의 눈길을 잔도 쪽으로 끌어두면 될 것입니다. 신에게 이미 계책이 서 있으나 이 또한 미리 새어나가서는 안 될 엄한 군기라….”

아무래도 대전 안팎의 이목이 걱정된다는 듯 한신이 그렇게 말끝을 흐리자 한왕이 자신 있게 말했다.

“대장군은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이곳에는 과인이 수족처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뿐이오.”

그러자 한신이 역시 준비해 온 듯 말했다.

“그렇다면 번(樊) 낭중을 불러주십시오. 번 낭중처럼 거칠고 사나운 장수만이 교활한 장함을 속일 수 있는 계책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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