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12>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23일 20시 08분


대장군 韓信(11)

“번 낭중은 어서 대장군의 명을 받들도록 하라!”

한왕은 그래도 한신을 편들어 번쾌를 억눌렀다. 그러자 번쾌도 더는 뻗대지 못하고 한신의 명을 받아들였으나, 대전을 나가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였다.

“대장군. 정말로 군사 5백명이 스무날 만에 잔도를 다 만들 수 있겠소?”

번쾌가 나가자 한왕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운 듯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한왕의 물음을 동문서답으로 받았다.

“이제 대왕께서는 장군 조참(曺參)과 주발(周勃)을 불러 제 명을 받들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조참과 주발이 불려오자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두 분 장군은 오랫동안 사졸들과 함께 싸워온 터라 누구보다 그 사졸들의 출신이나 성품을 잘 아실 것이오. 진나라 땅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마음으로 우리 한나라를 따르지 않는 자들과, 관동(關東)에서부터 따라왔더라도 달아나 고향으로 돌아갈 틈만 노리는 자들로 5백명만 골라 주시오. 되도록이면 원망 많고 불평 많은 자들로 고르되, 일부러 그런 자들을 골랐다는 게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도록 하시오. 또 날이 많지 않으니 그들 5백명을 고르는 데 하루를 넘겨서는 아니 되오.”

조참과 주발은 그런 한신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했으나 워낙 한신이 급하게 몰아대니 그 군사들의 쓰임조차 물어보지 못하고 나갔다. 그러나 한왕은 그 머릿수를 듣자 짐작이 갔다.

“원망 불평 많은 자들이 일을 제대로 할 리 있겠소? 그런 군사들에게 가뜩이나 어려운 잔도 일을 맡겨도 되겠소? 또 그러잖아도 이번 일을 못마땅해 하는 번 장군은 어떻게 달래겠소?”

한왕이 다시 걱정이 되어 그렇게 물었으나 한신은 여전히 모를 소리만 했다.

“대왕께서는 너무 심려 마십시오. 번 장군이 화를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우리 계책은 더 잘 먹혀들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한왕 앞을 물러나왔다.

다음날이었다. 조참과 주발이 충실하게 대장군의 명을 받들어 군사 5백명을 골라왔다.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붙잡힌 자들과 아직 몸은 한군(漢軍)에 남아있어도 마음은 이미 떠버려 동배들에게조차 따돌림 받고 있는 사졸들이었다.

한신은 궁궐 밖에 성안의 장졸을 모두 모아두게 하고, 대장군의 위의(威儀)를 갖춘 뒤 그리로 나갔다. 그리고 번쾌에게 여럿 앞에서 대장군으로서 첫 번째 군명을 내렸다.

“번 장군은 이들 5백명을 데리고 식곡(蝕谷)으로 가서 스무날 안으로 우리가 한중으로 들어올 때 부수고 불태워버린 잔도를 다시 고쳐 세우시오. 우리는 바로 폐구(廢丘)로 치고나가, 한 싸움에 옹왕(雍王) 장함을 사로잡고 그 땅을 평정할 것이오.”

그 말에 번쾌의 얼굴이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한군(漢軍)에서 으뜸가는 장수로서 한낱 역도(役徒)의 우두머리 꼴이 되어 길을 닦으러 가는 것도 성이 나는데, 주어진 병력마저 그렇게 한심한 것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무어라 한마디 하려는데 한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다시 번쾌의 심사를 건드렸다.

“이는 대군의 진퇴가 걸린 일이니 기한을 어겨서는 아니 되오. 번 장군은 군령장(軍令狀)을 써두고 가시오. 만일 기한을 어기면 허리를 베이게 될 것이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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