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15>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27일 18시 3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장군 韓信(14)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소(蕭) 승상께서 해 오신 일은 한낱 유민군(流民軍)의 징집관이나 군량관(軍糧官)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때그때 생기는 사람과 재물 만으로 임시변통하는 식으로는 아니 됩니다. 이왕에 한중과 파촉 땅을 얻어 한왕(漢王)이 되셨으니, 하루 속히 한나라의 관부(官府)를 갖춰 군사로 불러 쓸 수 있는 장정과 거둘 수 있는 부세(賦稅)를 헤아린 뒤에 거기 맞춰 병력과 물자의 수급을 정해야 합니다. 대왕께서는 먼저 소 승상께 군사 약간을 딸려주어 멀리 관중의 전화(戰火)가 미치기 어려운 파촉에다 승상부를 차리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거기서 거둔 것들로 우리 한군(漢軍)의 뒤를 대게 하신다면 삼진(三秦)을 평정할 때까지는 넉넉할 것입니다.”

“대장군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길게 내다보고 세운 양책인 듯싶소. 소 승상을 불러 그리 하도록 하겠소. 그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이오?”

한층 겸허해진 한왕이 다시 그렇게 물었다.

“삼군(三軍)과 오병(五兵)의 제도를 정비하고 기(奇) 외(外) 별(別) 삼부(三部)를 더하여 우리 한군(漢軍)에게 천하 쟁패의 싸움을 감당할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임금의 명을 받고 싸우는 군대(王師)로서 정면으로 대군을 맞아 싸우는 데는 삼군과 오병의 공고함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을 유격(遊擊)하고, 간세(奸細)를 부리며, 척후와 반간(反間)을 맡아 하는 삼부도 천하 쟁패를 위해서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 아니 됩니다. 그 모두를 갖춘 뒤에는 항오(行伍) 단병(短兵)의 법과 행군(行軍) 설진(設陣)의 요령을 가르치면 동쪽으로 나갈 채비는 대강 마련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모두가 군사를 부리는 일이니, 과인은 이미 대장군에게 모두 맡긴 터요. 따로 허락을 구할 것 없이 모두 대장군이 알아서 처결하시오!”

한왕이 그렇게 시원스레 한신의 말을 받아들여 주자 그날부터 한군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강 장수에 따라 나뉘고 그때그때 싸움 형편에 따라 몇 갈래로 합치거나 갈라졌던 대군은 엄격한 삼군 오병의 편제에 따라 다시 짜여졌다. 그리고 기병(奇兵)과 유군(遊軍)을 다루는 기부(奇部)에 간세와 척후를 맡는 외부(外部), 반간을 맡는 별부(別部)가 더해져 본부 한군의 감춰진 발톱과 이빨(爪牙)이 되었다.

그 다음 남정(南鄭) 교외의 벌판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조련에 들어간 한나라 군사들의 열기와 함성소리로 가득 찼다. 오래된 사졸은 3년 넘게 전장을 누볐고, 나중 중원으로 들어와서 얻은 군사도 관중에서의 힘든 싸움을 몇 번이나 겪었지만, 한신이 가르친 대로 조련을 받자 열흘도 안돼 한군의 기세는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다.

조련과 더불어 한신은 또 필요한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잊지 않았다.

“승상 소하가 파촉에서 곧 5만 군사를 뽑아 보낼 것이다. 그들을 합쳐 10만의 정예군을 기른 뒤 식(蝕)골짜기를 지나 두현(杜縣)으로 나아간다. 그때쯤은 번쾌 장군이 새로 닦고 있는 잔도도 다 이루어져 남정에서 열흘이면 옹왕(雍王) 장함의 도읍인 폐구(廢丘)를 에워쌀 수 있다. 그 한 싸움으로 장함을 사로잡고 바로 함곡관을 나가 천하대세를 결정한다!”

말할 것도 없이 장함의 이목을 잔도 쪽으로만 끌어놓기 위해서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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