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2>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06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7)

“장군들도 모두 돌아가 내일 새벽 전군을 들어 장함을 불시에 들이칠 수 있도록 채비하시오. 일찍 군사들을 재우고 사경(四更)이 되거든 깨워 날이 새기 전까지는 싸울 태세를 갖추어야 하오. 그리고 날이 새는 것을 군호(軍號) 삼아 적진으로 밀고 들어 단번에 형세를 결정지어야 하오. 이 한 싸움으로 옹(雍)땅을 평정하여야만 동쪽으로 나가 천하를 다툴 수가 있소. 삼진(三秦)이라고는 하나, 옹왕 장함만 사로잡으면 새왕(塞王) 사마흔이나 적왕(翟王) 동예는 그리 두려워할 게 없는 위인들이오.”

그동안 대장군으로서 한신을 믿게 된 장수들은 군소리 없이 그 명에 따랐다. 저마다 군막으로 돌아가 그 새벽의 기습 준비에 빈틈이 없도록 이끄는 군사들을 다잡았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사경에 일어나 소리 없이 싸울 채비를 갖춘 한군은 전후좌우를 나눌 것도 없이 거센 물결처럼 장함의 진채를 덮쳐갔다. 워낙 많은 군사들이 한꺼번에 움직인 것이라 조심한다고 해도 이내 파수 보는 적병에게 들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군이 덮쳐오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린 옹군(雍軍) 망보기가 급히 그 일을 장함에게 알렸다. 아우 장평이 대군을 이끌고 온 게 반가워 잠시 마음을 놓고 있던 장함은 그 갑작스러운 전갈을 받자 깜짝 놀랐다. 누구보다 기습에 능한 장수답지 않게 허둥대며 장졸들을 깨우고 한군을 맞을 채비를 하게 했다.

하지만 새벽잠에서 깨어난 옹군 장졸들에게는 제대로 채비할 겨를이 없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되는 대로 갑옷을 걸치고 병장기를 찾아 드는데, 벌써 한군의 선두가 진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되자 싸움은 처음부터 승리가 한군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되었다.

“장평에게 사람을 보내 어서 군사를 움직이게 하라. 동쪽으로부터 적의 옆구리를 찔러 두 토막을 내고 우리와 합친 뒤에 함께 한왕을 사로잡자고 하여라.”

장함은 그렇게 명을 내리고 자신은 선두에 나서 장졸들의 기세를 돋우었다. 왕이 몸소 칼을 뽑아들고 진두에 선 모습은 볼만했으나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한왕 유방과 대장군 한신도 앞장서 장졸들을 이끌고 있는 데다 한군은 이미 승세를 타고 있었다. 겁먹고 몰리는 옹군들을 북돋기는커녕 오히려 장함을 알아본 한군 장수들의 기세만 올려주고 말았다.

“저기 옹왕 장함이 있다. 장함을 사로잡아라!”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이어 한군 장졸들이 모두 장함을 향해 몰려들었다.

옹왕 장함은 이끌고 있던 장수들을 모두 풀어 몰려오는 한군 장수들과 맞서게 하면서 어서 빨리 장평의 구원이 이르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장함이 어렵게 한식경을 버티고 있는데 장평에게 보냈던 군사가 피투성이로 돌아와 말했다.

“장평 장군께서 구원을 오시기는 틀렸습니다. 장군도 이 새벽 우리처럼 한군의 기습을 받고 힘을 다해 버텼으나,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조금 전 호치(好치) 성안으로 피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러잖아도 어렵게 싸움을 끌어오던 장함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더는 견뎌내지 못하고 먼저 말머리를 돌리면서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과인은 폐구로 돌아가려 한다. 여러 장수들은 힘을 다해 패군을 수습하고 폐구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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