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5>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50분


彭城에 깃드는 어둠(2)

“한왕 유방이 지난 8월에 고도현의 옛길을 따라 대산관을 빠져나왔습니다. 옹왕 장함이 한왕을 맞아 진창, 호치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마침내는 폐구에 에워싸여 있다가 한군의 수공(水攻)을 당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합니다. 이에 거침없이 동쪽으로 밀고 나간 한왕은 이렇다 할 싸움도 없이 새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의 항복을 받아 관중을 모두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정창이 보낸 사자가 달려와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 듯 허덕이며 알렸다. 패왕이 놀라 그 사자에게 물었다.

“옹왕이 그리된 것은 알 듯도 하다만, 새왕과 적왕은 어찌된 일이냐? 내 저희를 믿어 특히 삼진(三秦)의 왕으로 세운 지 아직 반년을 넘지 않았거늘 무슨 까닭으로 싸움조차 해보지 않고 항복하였다더냐?”

“새왕 사마흔은 도읍인 역양((력,역)陽)성에 기대 한왕에게 맞서볼 양으로 성문을 닫아걸고 버티었습니다. 그러나 한왕이 기장(騎將) 관영과 태복(太僕) 하후영에게 날랜 철기(鐵騎) 3000과 전거(戰車) 수십 대를 주어 보내 성을 에워싸고 옹왕 장함의 목을 보이며 겁을 주자 바로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또 적왕 동예는 옹왕이 죽고 새왕이 항복했다는 말을 듣자, 제 발로 도읍인 고노(高奴)성을 걸어나와 적(翟)땅을 한왕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정창의 사자가 이번에는 마치 그 모든 일이 제 죄라도 되는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패왕이 터질 듯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한왕과 그 군사들은 어디 있느냐?”

그 물음에 사자가 움찔하며 대답했다.

“여러 날째 관중에 머물러 쉬고 있을 뿐, 움직이는 기미가 없습니다. 사람을 풀어 알아보았더니 근거를 파촉 한중에서 관중으로 옮기는 중인 듯했고, 오직 무관(武關) 쪽으로만 한 갈래 한군의 움직임이 있었을 뿐입니다.”

“무관 쪽으로 한군이 움직였다? 그럼 한군이 무관을 넘었단 말이냐?”

“실은 그 일로 제가 이렇게 대왕께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가볍게 차린 한군 500이 험한 산길로 돌아 무관을 나왔다는 말을 듣고 우리 장군께서 즉시 군사를 내어 쫓으셨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패왕이 성난 소리로 외쳤다.

“네가 너희 주인 정창(鄭昌)을 장군으로 세워 한(韓)나라를 맡긴 것은 바로 그 한왕 유방에게서 무관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제 유방의 군사를 넘겨 보내고도 그 행방조차 모른다니 정창 그자는 도대체 목이 몇 개나 된다더냐?”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범증이 나서서 항우를 말렸다.

“이는 아마도 정창의 죄가 아닐 듯싶습니다. 대왕의 한낱 충직한 장수가 저 간사한 유방의 술수를 어찌 당해내겠습니까? 또 정창에게 죄가 있다 하더라도 더 급한 것은 그 죄를 묻는 일이 아니라, 무관을 넘어온 한군이 무얼 하려 하는지부터 알아내는 일입니다.”

그런 범증의 말투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데가 있어서 패왕이 이번에는 범증을 보고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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