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5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59분


“한(韓) 태위께서는 전에 대왕께서 남전(藍田)을 치실 때 쓰신 계책을 흉내 내어 먼저 허장성세로 한왕(韓王) 정창(鄭昌)의 눈과 귀를 속였습니다. 무관을 나오자마자 널리 의병(疑兵)의 깃발을 세워 3만 군세로 위장하고는 멀리 양적(陽翟)의 정창에게 전서(戰書)를 내어 남양(南陽)에서 일전을 벌이자고 한 것입니다. 호랑이의 위세를 업은 여우처럼 항왕의 뒷받침만 믿고 그리 많지 않은 군사로 한나라를 지키고 있는 정창에게는 3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군입니다. 그런데 다시 남양은 왕릉(王陵) 장군이 오래 둥지를 틀고 있던 땅이라 아직도 우리 한나라를 따르는 세력이 많으니, 정창은 싸우기에 앞서 겁부터 먹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팽성에 급히 구원을 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남왕 신양에게 사자를 보내 도움을 구하면서 며칠을 양적에서 머뭇거렸습니다.”

“신(信)에게 그런 꾀가 있었단 말인가? 겉보기와는 다르구나.”

한왕 유방이 사자의 얘기를 듣다가 너털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했다. 한(韓) 태위 신(信)의 큰 키와 항시 희번덕거리는 듯한 굵은 눈망울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한왕의 웃음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사자가 한층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하남왕 신양은 대왕께 에워싸여 정창을 도울 겨를이 없고, 항왕은 군사는 보태주지 않으면서 싸움만 재촉하니, 정창은 하는 수 없이 양적에서 2만 군사를 긁어모아 남양으로 떠났습니다. 자신이 없는 싸움을 하러 가는 길이니 행군인들 제대로 되겠습니까? 하룻길을 걸어 겨우 양성(陽城)에 이른 정창은 성 밖에 진채를 내리고 군사들을 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한 태위께서 이끈 우리 군사가 정창의 진채를 급습하여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정창이 그렇게 만만한 장수가 아니다. 거기다가 한 태위는 남양에 있다 했는데 어떻게 3백리나 떨어진 양성을 소리 소문 없이 급습할 수 있었느냐?”

이번에는 한왕이 궁금하다는 눈길로 물었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른 사자가 답했다.

“한 태위께서는 남양으로 간 적이 없습니다. 무관을 나오신 뒤 노약한 군사와 마구잡이로 모아 들인 농군들만 요란스러운 깃발을 앞세워 남양으로 향하게 하고, 태위께서는 젊고 날랜 군사 5000을 골라 처음부터 양적으로 바로 달려갔습니다. 다만 보는 눈이 많은 큰길을 피하고 몰래 밤길을 달리느라 오히려 양성에 이른 게 더뎌졌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야습은 남양만 바라보고 있던 정창에게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매서운 일격이었을 것입니다.”

“정창은 그날 밤 양성에서 항복하였느냐?”

“아닙니다. 정창은 용케 몸을 빼 양적으로 달아났으나, 다음날 하남왕 신양이 대왕께 항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그러자 한왕이 다시 빙긋이 웃으며 저잣거리의 노름꾼처럼 말했다.

“신(信)이 이번 패에 크게 걸었구나. 크게 따 마땅하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던지 이내 군왕의 말투가 되어 덧붙였다.

“실로 과감한 돌진이었다. 그 땅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며칠 뒤 한 태위 신이 낙양에 이를 때까지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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