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04>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2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하늘이 과인에게 팽성을 내리시려 하오. 아니 서초(西楚)와 천하를 내게 주시려 하오. 밤이 길면 꿈자리가 사나운 법, 하늘이 내리시는 것을 서둘러 받지 않으면 되레 화가 될 것이요. 밥을 지어먹고 쉬는 일이야말로 팽성에 든 뒤에 해도 늦지 않소.”

한왕은 무엇에 취한 사람처럼 그렇게 한신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장졸들을 몰아대 그 길로 팽성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한신의 말을 들어준 것이 있다면 관영과 조참의 군사를 소성(蕭城)에 남긴 일이었다. 그곳에서 쉬면서 정도(定陶)에서 한바탕 힘든 싸움을 겪고 산동을 에돌아오는 동안의 피로를 씻는 한편 같이 남겨준 제후군 5만과 더불어 팽성의 서쪽 울타리가 되게 했다.

적어도 팽성을 얻는 일은 한왕의 말이 맞았다. 소성에 8만을 떼어놓고도 50만 가까운 대군으로 팽성에 이른 제후군의 전군(前軍) 선봉은 팽성 서문 앞에서 나아가기를 멈추고 중군(中軍)에 급한 전갈을 보내왔다. 소성을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된 때의 일이었다.

“팽성의 서문이 활짝 열려 있고 성벽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피란하는 백성들만 이따금 성을 버리고 달아날 뿐입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먼저 대장군께 알리고 하회를 기다립니다.”

“그래도 팽성은 서초의 도읍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요충(要衝)이기도 하다.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내줄 리가 없다. 전군은 성 밖에 잠시 진세를 펼치고 대왕께서 이르시기를 기다려라!”

한신이 먼저 그런 명을 내리고 한왕과 함께 전군 진채로 달려갔다. 전군 앞으로 나서 팽성을 바라보니 정말로 들은 대로였다. 성문은 활짝 열려 있고 성벽 위에는 지키는 군사 한명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그때는 그쪽 성문으로 나다니는 피란민도 없어 마치 텅 빈 성처럼 보였다.

“자방 선생. 이게 어찌된 일이오? 병법에 성문을 열고 성을 비워 싸우는 계책도 있소?”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듯 곁에 있는 장량에게 물었다. 장량이 희고 단정한 이맛살을 찌푸려가며 이리저리 성안을 살피다가 역시 모르겠다는 듯 한신을 보고 말했다.

“대장군. 우리를 성안으로 꾀어 들여 들이치려는 계책치고는 너무 허술하고 위태롭지 않소? 아무리 매복을 하고 장치를 갖추었다 해도 50만 대군을 좁은 성안에 들여놓은 뒤에 무슨 수로 쳐부순단 말이오?”

“글쎄요….”

한신도 자신이 없는지 그렇게 대꾸하며 4월 한낮에 조는 듯 서 있는 팽성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때 갑자기 성문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갑주도 걸치지 않고 손에 든 병기도 없는 것으로 보아 군사들은 아니었으나, 복색을 보니 여느 백성들도 아니었다.

“저건 무엇이냐?”

한왕이 그들을 쳐다보다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물었다. 곁에 있던 눈 밝은 장수 하나가 대답했다.

“복색을 보니 유생(儒生)의 무리 같습니다. 누군가를 떠받들 듯 에워싼 채 이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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