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37>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7시 32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항왕이 일부러 퍼뜨리게 한 헛소문일 것이다. 며칠 전에도 팽성으로 올 것이라 하고 소성부터 치지 않았느냐? 하지만 정말로 온다고 해도 걱정 없다. 이번에는 우리가 올무와 덫을 놓고 기다리다가 겁 모르고 내닫는 멧돼지를 얽으면 된다.”

그렇게 큰소리치며 장졸들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였다. 한신이 그래도 알 수 없다 싶어 동쪽을 살펴보라고 보낸 군사 하나가 숨이 턱에 닿듯 달려와 알렸다.

“서초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팽성을 출발했다 합니다.”

“머릿수가 얼마나 되더냐?”

한신이 알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 군사가 아직도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들판을 허옇게 덮고 있는데 적어도 10만은 되어 보입니다.”

“10만이라? 항왕에게 무슨 군사가 10만이나 된단 말이냐? 하룻밤 새 만들어내기라도 했단 말이냐? 네가 헛것을 본 모양이로구나.”

한신이 그렇게 말하며 믿지 못해 하는데 다시 동쪽을 살피러 갔던 군사 하나가 돌아와 보다 자세한 소식을 전했다.

“아룁니다. 패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30리 밖에 와 있습니다. 이제 한시진이면 이곳에 이를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한신도 더는 군사들의 말꼬리만 잡고 늘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곧 한왕을 찾아보고 장수들을 모두 군막에 모으게 했다. 그 사이에 보다 자세한 소식이 들어왔다.

“패왕이 자신이 이끌던 3만과 종리매, 환초 등이 데리고 온 3만에다 어제 그제 팽성 인근에서 새로 뽑은 초나라 장정을 보태 오늘 새벽 팽성을 떠났습니다. 초군은 모두 합쳐 10만 대군을 일컫는데 그 기세가 자못 사납습니다. 또 범증과 계포가 제나라에서 이끌고 온 본진 10만도 어제 유성(留城)에서 떠났는데, 팽성에 들지 않고 바로 이리 올 것이라 합니다.”

그제야 한신에게도 패왕 항우가 이끌고 있다는 10만 대군이 실감이 났다. 한신이 살피러간 군사들의 말을 얼른 믿지 못한 것은 팽성이 다름 아닌 서초의 도읍이요 패왕의 근거지임을 깜빡 잊은 탓이었다. 관중(關中)이 한왕에게 군량과 병력을 대주는 곳이듯 서초(西楚)는 패왕에게 같은 일을 하는데, 팽성이 바로 그 중심이었다. 패왕이 이틀 사이에 장정 몇 만을 끌어냈다 해서 안 될 일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때에 채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패왕의 대군과 전단(戰端)을 열게 된 한신은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 좋지 못한 운세로 내몰리고 있는 듯한 불길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대장군이 되어 그런 동요나 위축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적은 10만 대군을 일컫고 있으나 주력은 제나라에서 달려와 지친 5만 남짓이다. 아무리 패왕이 이끌고 있다 해도 우리 20만 대군으로 몰아 잡으면 한 싸움으로 이길 수 있다. 또 제나라에서 돌아오는 10만이 패왕의 뒤를 받칠 것이라 하나 그들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이곳 싸움을 빨리 끝내면, 결국 적은 많은 군사를 둘로 갈라 하나씩 우리에게 바친 꼴이 될 것이니 헛소문에 흔들리지 말고 모두 맡은 바 할일을 다하라.”

장수들이 한왕의 군막으로 모이자 그렇게 기운을 돋워주며 진작부터 짜놓은 대로 일러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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