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01>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11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때 관동(關東)과 중원(中原)에서 한왕 유방에게 등을 돌린 제후나 왕은 위표 뿐만이 아니었다. 연왕(燕王) 장도(臧도)는 진작부터 패왕 항우의 사람이었고, 대왕(代王)이지만 실은 조왕(趙王)을 겸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성안군 (成安君) 진여(陳餘)도 팽성의 싸움이 끝난 뒤로는 초나라로 돌아서 버렸다.

거기다가 패왕과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전횡(田橫)까지도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내세워 초나라와 화평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 중에서도 한왕을 저버린 까닭이 특이한 것은 조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는 성안군 진여였다. 진여는 원래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와 함께 ‘문경지교’(刎頸之交·서로를 위해서 목을 베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이)란 말이 생겨나게 할 만큼 오래고 끈끈한 교분을 이어온 사람이었다.

뒤에 함께 조나라를 세우다시피 하고 나란히 승상과 대장군이 되었으나, 거록(鉅鹿)의 싸움 때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진나라 장수 왕리(王離)에게 거록이 포위되자 장이는 승상으로 성안에서 싸우고 진여는 대장군으로 성밖에서 호응하게 되었는데, 그 뒤가 그들의 뜻과 같이 풀리지 못했다. 세심하고 치밀한 진여가 망설이는 사이 성안에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던 장이는 진여를 원망하게 되었고, 마침내 항우의 구원을 받았을 때에는 진여로부터 장군인(將軍印)까지 거두어 버렸다. 이에 진여가 앙심을 품고 조나라를 떠나자 둘은 곧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는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 뒤 항우를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가 상산왕이 되었던 장이는 진여의 계략에 빠져 왕위를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자 한왕 유방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하지만 의제(義帝) 시해를 구실로 항우를 치려고 널리 제후들의 세력을 규합하고 있던 한왕은 조(趙) 대(代) 두 나라를 아울러 주무르는 진여에게도 격문을 보내 함께 움직이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진여가 한왕의 사자에게 말했다.

“장이의 목을 보내주면 대왕의 뜻을 따르겠소!”

그 말을 들은 한왕은 난감했다. 아무리 팽성을 치는데 조나라와 대나라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해도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을 죽여 그 도움을 살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장이처럼 세상이 다 알아주는 현인(賢人)임에랴. 이에 한왕은 고심 끝에 장이를 닮은 사람의 목을 잘라 진여를 속이고 그를 한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팽성 싸움을 통해 장이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진여는 하루아침에 한왕을 저버리고 초나라로 돌아서버렸다. 뿐만 아니라 장이에게 품고 있던 원한과 분노를 모두 한왕에게로 옮겨 앙갚음할 기회만 노렸다. 한왕 유방이 눈앞에 닥친 패왕을 두고 동북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도 어쩌면 위표보다는 진여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여의 그와 같이 표독스럽고도 집요한 적의는 당연히 한나라 대장군인 한신에게도 주의 깊게 헤아려야할 전략적 변수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3만 군사로 형양을 떠나올 때는 위표를 사로잡는 것이 목표였으나, 위나라를 평정하고 보니 진여를 등 뒤에 그냥 두고 패왕과 싸울 수는 없을 듯했다. 거기다가 연나라나 제나라도 무시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나라들이었다. 이에 한신은 군사를 돌려 형양으로 가는 대신 한왕에게 사자를 보내 긴 글을 올리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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