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7)

  • 입력 2002년 4월 24일 18시 07분


제단 앞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유미리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유미리는 카디건의 소매로 땀을 닦는다.

유미리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아이의 아버지는 임신 6개월 때, 큐큐 파파, 없어져버렸어요.

무당2 아아, 할배가 울어.

무당3 아이고 불쌍한 것 너나 니 어미나 시원찮은 남자를 만나서

무당2 할배, 이 아이의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대요, 배도 아프대요. 그러니까, 할배가 고쳐줘요.

무당3 신희(信姬)가 고생이 많았지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너희들을 먹여 살렸어 아이고 신희야 불쌍한 내 딸아!

무당2 (어린애 목소리로) 엄마한테 말해, 올해는 조심하라고. 3년 전부터 몸이 안 좋으니까, 올해는 먼 데 나다니지 말라고.

무당3 너 어미를 어찌할꼬 아이고!

무당2 할배가 해탈해서 극락으로 가면 다 나아. 할배한테 술을 따라 올려.

유미리는 제단에 있는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고 세 번, 두 손을 모아 이마높이로 올린 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대는 한국식 절을 한다.

무당3 큐큐 파파 장래의 신랑감이 니 앞에 있구나 그 사내하고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부부의 연을 맺거라

유미리 (고개를 갸웃하고) 일본 사람인가요?

무당3 그래 일본 사람이다

무당2 (어린애 목소리로) 이 아이, 독해요, 그렇게 쉽게 시집가지 않을 텐데.

무당3 걱정할 것 없다 벌써 만났어 큐큐 파파 너 새끼는 이름이 뭐가?

유미리 도모하루(與陽)예요.

유미리는 집게 손가락으로 무당의 손가락에 ‘與陽’이라고 쓴다.

무당3 여양이라 좋은 이름이다 밀양의 양이지

유미리 양이란 글자는, 그가, 큐큐 파파, 아이의 아버지가 붙인 거예요.

무당3 성격이 명랑해서 사람들한테 사랑받겠다 큐큐 파파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거야

유미리 그가 자기 아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러는데, 언젠가는 만나게 될까요?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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