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22)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 22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45분


무당3 8월말이었는데예 동네 친구들과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면서 강가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지예 아메아메 후레후레 카아상가 쟈노메데오무카이 우레시이나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비야비야 내려라 엄마가 지 우산들고 마중나오네 신난다 포롱포롱 참방참방 랄랄라)

강둑 위에서는 이 씨 형제가 달리고 있었어예 밀양에서는 이우철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거든예 온 동네 사람이 3년 전 도쿄 올림픽이 중지되지 않았더라면 출전했을 거라고들 말했지예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땀냄새와 숨소리가 지나가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8월의 긴긴 저녁 해가 두 사람의 어깨를 빨갛게 물들이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숨소리가 멀어지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우근씨 같은 사람한테 시집가면 참 좋겠다 너 같은 아를 헤에나(행여나) 색시 삼겠다 우근씨는 부산에 있는 경남상고에 다닌다 아이가 아주 좋은 집안에서 색시 데려올끼다 와 한 눈에 반할 수도 있재 누구한테? 그야 물론 나재 나는 우근씨를 사모하고 있었어예

아라아라 아노코와즈부누레타 야나기노네카타테 나이테이루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어머 어머 저 아이 홀딱 젖었네 버드나무 아래서 울고 있네 포롱포롱 참방참방 랄랄라)

어언 해가 기우는데 낯선 남자가 다가오대예 친구들은 고무줄을 내던지고 도망쳤어예 남자가 혼자 남은 나한테 더듬더듬 조선말로 말을 걸대예 일본의 군복 공장에서 일하지 않겠어요 돈을 많이 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옷을 입어요 삼년 일하면 집에 돌아와요 그전에 시집가면 언제든지 집에 와요

엄마나 오빠들하고 의논하면 시집도 안 간 딸을 절대 외지로 보낼 수 없다고 할 테지만 내가 없어지면 양아버지는 속이 시원할지도 모르지예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된 나를 시집가라고 성화니께예 일본에서 일하면 3년 동안은 시집을 안 가도 되니까 난 그 일본 남자하고 삼랑진역에서 8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왔어예 다음 날 아침 식구들한테 암 말 않고 맨 손으로 남자 둘과 기차를 탔지예 봉천행 대륙(大陸)이대예 민간용 차량이 아니고 군인용 차량인 것이 좀 이상했지만 난생 처음 타보는 기차가 신기하고 고향을 떠난 것이 하도 좋아서 한 숨도 자지 않고 내내 차창 밖을 내다봤어예 그 다음 날 아침 봉천에서 비둘기로 갈아타자 금방 잠이 쏟아지데예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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