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2…1925년 4월 7일(2)

  • 입력 2002년 6월 20일 18시 31분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매! 일어나라! 엄마가 큰일 났다! 나는 할매네 집 문을 두드렸다 할매는 서둘러 보따리를 싸들고 나왔다 지금 막 꿈을 꾸고 있었다 새빨간 초승달빛이 안방으로 스며들어서 아이고 피를 흘리는 것처럼 녹아 없어져버렸어 아기 팔자가 드세지 않으면 좋으련만 큐큐 파파 할매는 허리가 굽어서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할매! 빨리! 빨리 안 가면 나와버린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엄마는 두 다리를 퍼덕거리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아버지가 엄마의 등을 쓸어주는데 할매가 방바닥에 비닐을 깔면서 여기는 산실이다 남자는 밖에서 기다리는 법이야 큐큐 파파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남자지만 아파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큐큐 파파 할매는 엄마의 옷을 검은 치마로 갈아 입히고 뒤에서 몸을 껴안고 두 손을 꽉 잡았다 큐큐 파파 희향아! 조금만 더 힘내라! 힘내! 큐큐 파파 할매는 쌀과 미역과 물과 1엔 짜리 지폐를 바쳐놓은 산신상(産神床)을 향하여 빌었다 산신 할매 산신 할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게만 해 주소서 큐큐 파파 아기는 닭이 울고 날이 밝았는데도 태어나지 않았다 할매는 날계란에 참기름을 섞어 엄마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커다란 배에 아버지의 바지저고리를 덮어씌우고 울부짖었다 아이고 우리 손주야! 어서 빨리 나와서 너 엄마를 편케 해다오! 어서 어서 아버지에게 얼굴을 좀 보여다오! 큐큐 파파 할매가 내게 말했다 우철아 교동에 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집에 아이를 일곱이나 순산한 부선이란 아줌마가 있다 한 달음에 뛰어가서 그 아줌마를 데리고 오너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부선 아줌마의 손을 끌고 뛰었다 부선 아줌마는 엄마의 배 위를 몇 번이나 뛰어 넘었다 큐큐 파파 그래도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부선 아줌마는 이마에 돋은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큐큐 파파 셋째 딸을 낳을 때만 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그 때 남편이 돌을 띄워보내 주었어 밀양강에 큐큐 파파

할매는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우철아 돌멩이 하나 띄워보내고 오너라 큐큐 파파 나는 강가에 있는 돌을 주워 강물에 던졌다 뜨지 않고 가라앉아 다시 하나를 주워 던졌다 큐큐 파파 빨리 좀 나와라!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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