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65…아리랑(4)

  • 입력 2002년 7월 5일 18시 15분


아낙네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일제히 떨어져나갔지만, 미나리를 뜯는 손길만큼은 쉼이 없었다. 모를 심고, 벼를 거둬들이고, 닭의 목을 조르고, 날개를 비틀고, 아기를 어르고, 김치를 담그고, 밭을 갈고, 집안을 청소하고,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나르고, 빨래를 하고, 삶고, 풀을 먹여 발로 밟고, 다듬이질을 하고, 장작과 불쏘시개를 마련하고, 곡식을 빻고, 밥을 짓고, 베를 짜고, 바늘에 실을 꿰고,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눈물이 흘러도 아픔에 신음이 배어나와도, 공포에 떨고 있어도, 여인네들은 그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왜놈들이 병신 만들어 놓을거다. 김선생네 아들은 다리 뼈가 부러져서, 껍질 벗긴 감자처럼 무릎뼈가 튀어나왔다 안 카나”

“인두질에 채찍질, 전기, 콧구멍에다는 물을 쏟아붓고, 손톱 사이를 바늘로 찌르고, 남자 거시기에다 지승(紙繩)도 쑤셔박았다 카더라…”

“병신이 돼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그나마 났재. 밀양 서에 폭탄을 던진 최수봉은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집에서 폭탄을 만들었나 보던데, 식구들도 전혀 몰랐다 카더라. 하기사 매일밤 폭탄을 베고 잤다 카니”

“몇 년이나 지났재?”

“5년 아이가”

“그 때는 참말로 엄청났재, 경찰서 창문이 죄 깨져버렸다 아이가”

“그래도 왜놈들은 한 놈도 안 죽었더라. 부산 경찰서 때는 서장이 죽었는데…”

“도망 못 친다고 각오를 했으니께 수봉이가 단도로 자기 목을 그었재. 그런데도 죽지 못했으니”

“잡혀서 목매달렸재”

“아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김병환은 징역 3년 받았으니까, 이제 나올 때가 됐재 아마”

“벌써 나왔다는 얘기 들었는데, 행방을 감췄다고 카더라. 상해에 가서 김원봉 장군하고 같이 활동하고 있을끼다, 틀림없다”

“의열단에는 밀양 사람들이 많재”

“많다 뿐이가, 절반이 밀양 사람이다”

“아니재, 거의 다 아니가. 김원봉 장군이 밀양 사람인데 안 그렇겠나. 김원봉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눈에 다. 뒷간에다 일장기 버려서 퇴학 먹었을 정도니께네”

“그 집 형제들은 우예 됐노?”

“첫 부인 월향이가 낳은 아들은 원봉이하고 경봉이뿐이지만, 첩하고 둘째 부인이 아들 많이 낳았다 아이가. 전부 구남일녀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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