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67…아리랑(6)

  • 입력 2002년 7월 8일 18시 25분


우철은 동틀녘과 해질녘에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집을 나설 때는 없었던 그림자가 일출과 함께 또렷해지면서 자기를 이끌어 주는 것도, 집을 나설 때는 등뒤로 길게 뻗어 있던 그림자가 일몰과 더불어 밤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지금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뻗어 있는 그림자는 우철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릴 걸 그랬다. 달릴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잔소리가 심하니까, 아버지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지 않으면 달릴 수 없다. 할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은 아침도 먹지 못했다. 도시락도 없이 저녁 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평소 같으면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깨는데, 밤늦은 시간에 뒷간에 간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사 참배와 청소를 빼먹었는데, 다케다 선생님이 내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을까? 만약 눈치를 챘다면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지만, 두 손을 번쩍 들고 서 있는 것과 채찍으로 손바닥이나 허벅지를 맞는 것하고 어느 쪽이 아플까? 양쪽 다 아플 것 같다. 차라리 오늘은 학교에 안 갈 걸 그랬나. 엄마가 아프다고 그러고.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일어나지 못하니까. 앗, 우홍이다!

“우홍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배다리 위에서 우홍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동생 생=다!”

우철은 팔을 휘저으며 강둑을 뛰어내려가 두 팔로 균형을 잡으면서 배다리 끝을 달렸다.

“남자 아가?”

“응”

“그래도, 열두 살이나 차이 나니까 같이 놀지도 못하고 재미없겠다”

“아니다. 재밌다. 내가 여러 가지로 가르쳐줄 수 있다 아이가”

우철은 우홍의 목에 팔을 두르고 옆구리를 툭툭 쳤다.

“바보! 떨어지겠다!”

우홍은 우철의 팔을 뿌리치고 대기에 거품이 일 듯 소리내어 웃었다.

교복 차림의 밀양 심상(尋常)소학교 학생 두 명이 옆으로 지나갔다. 그 눈길이 저고리에서 바지로 흘러내려 1초 정도 짚신에 머물렀다가 강으로 옮겨갔다.

조선 사람이 다니는 밀양 보통학교에서 조금 더 가면 일본 사람들을 위한 밀양 심상 소학교가 있다. 일본 아이들은 운동화나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데, 조선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고 있으면 유복한 편이고 대개는 짚신을 신고 학교에 다닌다. 자갈길을 몇 시간이나 걸어 다니느라 발등과 발굼치에 피가 맺혀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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