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68…아리랑(7)

우철과 우홍은 일본 아이들의 눈을 의식하고서 일부러 서로의 머리와 등을 쿡쿡 치면서 강둑을 뛰어올라갔다.

“잘난 척 하기는”

“그래 말이다. 도둑놈 주제에 억수로 젠 척 한다”

“왜놈들은 절대로 눈을 보지 않는다. 눈높이를 맞추지 않는다”

“깔보는 거라, 조선놈이라고”

“다케다 선생, 내 없는 거 알드나?”

“아마 모를끼다. 매일 같이럼 새전함 옆에 지키고 서 있었지만, 팔짱끼고 눈 딱 감고 있었다 아이가. 오늘 아침에는 안 뛰었나?”

“비가 오는 줄 알았다”

“아침까지 오기는 했다”

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비의 흔적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강물이 불면 북쪽 성안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도 갈 수가 없다. 작년에는 마흔 번이나 강물이 불어 배다리 한쪽이 끊겨나갔고, 마을은 며칠이나 강으로 분단되었다.

“날씨 엄청 좋다”

“그래 엄청 좋다”

둘은 재악산 쪽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우철은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긴 한숨을 뱉었다. 일단 교문을 들어서면 조선말을 쓸 수 없다, 조선말은 금지돼 있는 것이다. 다케다 선생님은 굉장히 열심이다. 조선놈들에게 글자 같은 것 가르쳐 봐야 소용없다는 태도를 지닌 선생이 많은데 다케다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를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정열을 쏟고 있다. 그래서 바보 취급하면서 적당히 가르치는 선생들보다 성깔이 더럽다. 엊그제, 검도 시합을 하다가 “힘내!”라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효지는 수업 내내 두 손을 들고 벌을 섰다. 금지 사항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조선 사람들은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사실을 말할 수 없다. 왜놈 앞에서는 짓밟혀도 쥐어뜯겨도 찍 소리 하지 못하는 잡초가 되어야 한다. 일본 도둑놈! 경복궁에 난입하여 국모를 참살한 왜적놈! 일본 도둑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 사람을 노예로 삼은 왜적놈! 강도같은 일본! 우리의 땅과 언어와 자유를 강탈하고서도 아직도 모자라 여기저기 킁킁거리고 다니는 왜견(倭犬)놈!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대한제국은 지도상에서 소멸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조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조선은 존재한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