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83…아리랑(22)

  • 입력 2002년 7월 28일 17시 10분


“아무리 많이 죽여도 왜놈은 죽은 조선 사람의 수를 세지 않는다. 조선독립 운동하고 3.1만세 운동 때 왜놈의 손에 죽은 동포가 청일 전쟁하고 러일 전쟁 때 죽은 일본군보다 많다고 형이 그라더라. 일본은 조선과 합의하에 우리나라를 합병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민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안 끝났다. 왜놈을 한 명도 남김없이 이 땅에서 구축하기 전에는 전쟁은 안 끝난다. 안 있나, 우철아, 군인도 전차도 전함도 전투기도 없는 조선 사람들이 싸울 방법이 뭐가 있겠노?”

바람이랄 만한 바람은 불지 않는데, 아까부터 목 위에서 머리가 흔들린다. 우철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건지, 생각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우홍이 뭘 묻고 있는지는 안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너무도 혼란스러워, 생각할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우홍의 말에 걸려들 것 같다, 우홍의 말이 아니라 우홍이 형의, 아니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포의 말에.

“울 형이 유서 써서 나한테 주더라. 내가 죽으면 아버지한테 전하라 카면서…” 우홍의 단호한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우철은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벌써 밀양을 떠났다”

“너거는 형제 둘밖에 없다 아이가? 만약 너가 의열단에 들어가면…”

침묵 속에서 종이 울렸다. 둘은 조용히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다음 시간 수업이 뭐더라?” 우철이 평소의 목소리로 물었다.

“산술이다” 우홍도 평소 목소리로 답했다.

“산술”

“3학기, 5였제?”

“그래, 안 됐나?”

“안 됐지, 나는 9다”

“와, 그거 굉장하네”

둘은 웃었다. 웃는 우홍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의 표정이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도 있는 거로구나, 하고 우철은 생각했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1학년들이 기차놀이를 하면서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교실까지 달리기 시합이다” 우홍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시합이다” 우철은 우홍의 목소리를 받아 던졌다.

“이우철, 승부!”

“어디 앞지를 수 있으면 앞질러 봐라!”

둘은 팔굼치를 부딪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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