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물을 퍼서 머리에 뒤집어쓰고, 또 퍼서 뒤집어썼다. 단박에 하얀 피부가 얻어맞은 것처럼 빨갛게 물들었지만 여자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온 마음으로 물을 퍼부었다.
파란색 치마 저고리와 쓰개치마로 옷을 갈아입은 여자는 안방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제사상에 정화수와 미역국과 흰쌀밥 세 공기와 위패를 올려놓고, 성냥을 그어 초에 불을 붙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조상님께 비나이다 그 사람의 아이를 갖게 해주시소 아무쪼록 사내아를 갖게 해주시소.
여자는 커다란 보자기 꾸러미를 껴안고 강가 길을 서둘러 걸었다. 첫닭과 개가 짖기 전에 용두산에 올라 샘물이 솟는 곳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비밀리에 치성을 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아무도 모르게 다녀와야 하는데. 너무 어둡다. 하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걸을 수는 있다. 앞으로 앞으로 서두르는 나의 혼이 횃불처럼 내 앞길을 비춰주고 있으니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집도 나무도 꽃도 사람도 모두 가라앉아 있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아내도 그 사람의 자식들도 모두 모두. 그러나 실상 가라앉아 있는 것은 나 혼자다. 내 목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는다. 살려달라고 외쳐봐야 수면위로 거품이 떠오를 뿐. 그 사람의 아이를 낳으면, 그 사람을 꼭 닮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물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양수와 함께 밀려나와 첫울음을 울 때, 내 목소리도 틀림없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늘 침묵을 남기고 간다. 나는 그 침묵에 몸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얼마나 말을 않고 있는지, 그 사람은 생각해 본 적도 없으리라. 무릎을 꿇고, 무릎을 껴안고, 무릎을 벌리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양동이 속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릴 뿐.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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