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7…백일 잔치 (12)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15분


“어머니! 비누 깜박했다!”

여탕과 남탕을 가르는 울타리 너머로 우철의 목소리가 건너 왔다.

“던져 줘라”

“아직 몸 안 씻었으니까 절반 갈라 줄란다. 오빠, 던진다, 하나, 둘, 셋!”

“야, 어디다 던지는 기고?”

“어머니, 이제 그만 나가자. 나, 기다리다 지쳤다.”

두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내가 먼저 눈을 돌리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아무 잘못도!

내 눈이 이 여자의 눈에 들어가 있다, 이 여자의 눈도 내 눈에,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 여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나와 이 여자만 벌거벗고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여자들이, 두근! 두근!

모두들 몸을 씻거나 탕에 들어가 있는데, 모두들 정지해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모든 여자의 눈이 우리를 향해 날아올 것 같다.

두근! 두근!

아이고, 부끄럽다, 얼굴을 가리고 싶다.

치욕을 넘어선 증오심에 쫓겨 희향은 탕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남탕에서 누구의 남편인지 복수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단군 자손 우리 소년 국치민욕(國恥民辱) 네 아느냐

부모 장사할 곳 없고 자손까지 종되었네

천지 넓고 넓건만 의지할 곳 어데냐

간 데마다 천대로 까닭 없이 구축되어

잊었느냐 잊었느냐 우리 원수 합병 수치를 네가 잊었느냐

자유와 독립을 다시 찾기로 우리 헌신에 전혀 있도다

나라가 없는 우리 동포 살아 있기 부끄럽다

땀을 흘리고 피를 흘려서 나라 수치 씻어놓고

뼈와 살은 거름되어 논과 밭에 유익되네

우리 목적 이것이니 잊지 말고 나아가세

부모 친척 다 버리고 외국 나온 소년들아

우리 원수 누구더냐 이를 갈고 분발하여

백두산에 칼을 갈고 두만강에 말을 먹여

앞으로 갓 하는 소리에 승전고를 울려

둥둥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