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잘도 외운다”
“하기사 경주는 서당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가. 남자였으면 과거 봐서 진사나 대과에 급제했을 거라고, 훈장이 다 그랬다”
“아이다. 늘 드나드는 조선 사람 가게 이름은 하나도 못 외운다, 간판이 없는 가게도 많고 말이다. 왜놈 가게는 못 들어간다 아이가? 그래서 가게 앞을 지날 때 간판 글자를 슬쩍 읽는 거다, 미야모토 사진관, 난바 목재점, 이노우에 서점, 도요세 양가구점, 가도다 문방구점 하고 말이다”
“아무튼, 15년 전만 해도 하나도 없었던 것들이다”
“아이고, 합병 전에는 쪽바리 놈들이 어데 한 명이나 있었나”
“지금은 1천2백 명이나 된다더라. 스무 명에 한 명은 왜놈 꼴이다”
“조선 사람들은 점점 구석쟁이로 몰리고 있다”
“…아까 그 형사, 누구 집에 갔을꼬”
“아이고, 또, 누구네 집 귀한 아들이 죽겠다”
“왜놈들 눈에는 다들 피가 묻어 있다.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노인들까지도…”
“종남산 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당신네 아들은 무사한가?”
분이는 입술을 툭 내밀고 용두목 앞 바위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는 낚싯줄을 드리운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다.
“야야! 만용아! 강에 떨어지겠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얼굴을 들고 손을 흔들었지만, 금방 또 꾸벅꾸벅.
바람이 휭휭, 구름을 화악산 쪽으로 날려보내자, 이불을 벗겨낸 파란 하늘이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쭈욱 기지개를 펴고 눈을 떴다. 벚꽃도 진달래도 활짝 피어 있다. 종달새 한 마리가 종달종달 종달종달 지저귀면서 파란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돌잔치 때 붓을 잡길래, 크면 박사가 될 줄 알았는데”
“뭐 어떻노, 건강하게 잘 살아 있는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자식이 의열단에나 들어가 봐라. 하기사,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는 젊은이들이 훌륭키는 하지만도, 자기 자식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법이다, 흘륭하면 무슨 소용이고”
“오늘 이가네 아들 돌이재”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사내아이더라, 내 안아 봤다 아이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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