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2…돌잡이 (8)

  • 입력 2002년 10월 7일 17시 44분


4월인데 어쩐 일인지 상당히 무덥다. 땀범벅이 되면 우근이가 가엾고, 오줌을 싸면 갈아 입힐 옷이 없으니까 색동저고리는 잔치 직전에 입히는 게 좋겠다. 혹 어머니가 벌써 입혀버린 건 아닐까?

설마, 준비 다 되면 내가 입힌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희향은 알전구와 전선과 대들보 사이에 커다란 거미집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편자 모양 촘촘한 그물에 벚꽃잎이 한 잎 두 잎 세 잎 걸려 있을 뿐,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들 때마다 물결치고 뒤틀리는 그물을 쳐다보는 희향의 눈두덩이 무거워졌다. 저렇게 큰 집을 지은 것을 보면 꽤나 큰 거미일 텐데.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다리가 긴 갈색 거미? 검정과 노랑 줄무늬 거미? 새카맣고 털이 많은 거미? 고무신 속에 숨어 있으면, 손님이 고무신을 들었다가 비명을 지를 테고 신어볼 때 짓뭉개질 수도 있다. 필시 독거미는 아닐 텐데 혹 손님의 발을 깨물면 큰일이다. 희향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자 눈꼬리에 눈물이 배어 나왔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팔을 내릴 때 땀 때문에 겨드랑이가 미끄러웠다. 덥다. 졸립다. 잠시 눈이라도 감고 있자, 아주 잠시만, 하고 눈을 감는데 뒷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눈을 뜨자, 점원인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아이고 미안네, 끄덕끄덕 졸았다”

“가게 인자, 제가 보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래 됐나?”

“네, 열두십니다”

“그럼, 저녁때까지 잘 부탁한다.”

우물가에 모여 물을 빨고 있던 호랑나비가 희향이 다가가자 훨훨 날아올라 훨훨 물 고인 자리에 내려앉았다. 희향은 저고리 소매를 걷어올리고 바가지로 우물물을 퍼서 얼굴을 씻고, 꿀꺽꿀꺽 마셨다.

젖은 얼굴을 들자 잠 기운은 싹 달아나고 없었다. 희향은 보았다. 소원이와 둘이서 씨를 뿌린 양귀비 꽃 몽우리가 벌어져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호랑나비의 뒷날개에 빨간 무늬가 있는 것을. 우근아, 빨강은 성취의 색, 액땜의 색, 축하의 색이란다. 꽃도 나비도 너의 돌을 축하하고 있어. 생일 축하한다! 축하한다! 축하한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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