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4…돌잡이 (10)

  • 입력 2002년 10월 9일 17시 58분


저는 웃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남편에게나 아들에게나 저 자신에게나 마음 약한 소리를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은 일이 없습니다. 도저히 길들 수 없는 일에 길들기 위해서 후회하고 한탄하고 화를 낼 새가 없었습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할 수는 없지요. 일어난 일과 똑바로 마주하고,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면 자긍심이 생깁니다. 자긍심은 저를 지탱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아들 부부는, 어머니 이제 일 그만두고 편히 쉬세요, 라고 하지만 눈이 보이는 한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손자 네 명과 증손자 열 다섯 명 모두 이 손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2천 명 이상의 아기를 받았을 겁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여한은 없지만, 때가 올 때까지 제 할 일을 할 것입니다. 남편은 어린애처럼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 벌써 기다리다 지쳤겠지요. 어이, 당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빨리 준비하라니까.

마음속으로 한숨 돌리고, 이나모리 키와는 옷자락의 격자 무늬를 살며시 쓰다듬고 허벅지 위에서 손바닥을 폈다. 조선말로 통역하면 의미가 누락되는 경우도 많고, 제대로 통역한다 한들 이해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폭파 사건을 일으키는 조선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6년 전에 밀양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목 매달린 남자는 당연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 남자를 영웅처럼 떠받들고 있다. 이 사람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나는 폭탄으로 비열하게 일본 사람을 구축하고자 하는 상해 의열단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폭탄에 내 아들과 손자, 증손자가 피를 흘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의열단을 비호하고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의 남편과 아들이 의열단원이다. 이 땅에 일본 사람들이 사는 것 자체가 조선 사람들에게는 상처다, 라고 한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는 올바르지 않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에게 우리의 입장이 있듯이, 이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들의 입장이 있어서, 서로가 자기들의 입장을 떠날 수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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