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8…1929년 11월 24일 (9)

  • 입력 2002년 10월 27일 17시 40분


둥둥둥! 둥둥둥!

캄캄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은 느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북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지? 조그맣고 부연 빛의 점이 떠오르고, 휭-휭-, 바람 소리다. 여자는 의식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쳤다. 눈앞에 입벌리고 있는 어둠에 삼키면 안 된다. 바람 소리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빛의 고리를 밀어 헤치자, 북소리가 멀어졌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이제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휭-휭-, 여자는 자신이 우물에 몸을 걸치고 있는 것을 알고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나는데, 어찔 시야가 흔들리면서 우물 벽이 탑처럼 솟아 쓰러질 뻔했다.

두 손에 힘을 꽉 주자 우물 벽에 빨간 손자국이 생겼다. 피? 아까 다 씻었는데. 누구 피지? 여자는 손바닥을 바짝 눈앞으로 가져갔다. 아무 것도 묻어 있지 않다. 휭-휭- 휭-휭-, 시야가 또렷해지자 두통도 점차 엷어졌다. 여자는 마당의 조용함에 귀기울였다. 휭-휭-,

엷은 먹색 하늘 아래서 나뭇가지와 마른 잎과 빨랫줄과 장독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 내 입이 움직이고 있다. 누구하고 얘기하는 것처럼. 하지만 목소리도 말도 나오지 않는다. 눈밑이 피끗피끗 떨린다.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10분이나 20분. 여자는 우물 벽을 잡고 일어섰다.

“엄마, 괜찮나?”

휭-휭-, 희향은 바람소리가 잦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괜찮다”

“얼굴색이 영 안 좋다”

“좀 어질어질해서 그렇다” 등으로 땀이 흐르고, 겨드랑이에서 옆구리로 타고 내린다.

우철은 넓적한 돌 위로 시선을 돌렸다. 볏도 조그맣고 알이 있는 것을 보면 암탉이다.

세 마리밖에 없는 귀한 암탉을 왜 잡았을까? 아버지 생일은 얼마 전에 지났고, 소원이하고 나는 12월이니까 아직 멀었고, 중구절(음력 9월9일)도 다 지났고, 친척 중에 누가 결혼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유림의 효행자 표창식도 내달이고.

“손님이 오나?” 우철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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