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68…1929년 11월 24일 (19)

  • 입력 2002년 11월 7일 18시 08분


안녕하세요? 어디 가나 보네예.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녀가 비난하듯 내 손바닥을 꼬집었다. 나는 재빨리 걸어 삼나무집 여자에게서 멀어졌다.

아는 사람인가봐예?

모른다.

그 쪽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기가 막혀서!

내가 그 여자 입장이었다면, 알아도 얼굴을 못 들 건데.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까지 걸다니 철면피라예! 고개는 왜 숙인 겁니까?

그냥 나도 모르게….

그라면 안 됩니다, 싹 무시해야재.

우철은 딱딱하게 굳은 손으로 짚 꾸러미를 고쳐 들었다. 그리고 얼음 아래 물의 흐름과 살 속 피의 흐름에 귀기울이면서 강을 건너 둑으로 뛰어올라갔다. 내 몸이나 암탉의 몸이나 얼어붙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숨과 함께 과거의 일들을 몸밖으로 토해내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공기와 함께 새로운 일들을 들이쉬어야 한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우 파아, 우철은 심호흡을 하고서 사립문을 열었다. 높다란 삼나무 밑을 지나고 우물 옆을 지나자, 집안에서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린애처럼 목소리 자체의 타성으로 훌쩍거림이 그치지 않는 울음이었다.

“계시는교!” 우철은 배에서 목소리를 짜냈다.

창호지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중년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뉘신지?”

“이용하의 아들, 이우철이라고 합니다”

“아아, 아이고 이렇게 누추한 곳엘…난 미령의 숙모입니다”

“이거, 어머니가 보내셨습니다” 우철은 짚 꾸러미를 내밀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좀 올라오시소. 여동생이 태어났으니까, 얼굴이라도 좀 보고 가이소”

“……”

“사내아가 아니라고 저래 내내 울면서 젖도 안 물립니다. 그래서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울라고 그냥 내버려둘까 싶습니다. 얼라는 안방에 있으니까, 좀 올라오이소. 자, 어서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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