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26회…강의왕자(2)

  • 입력 2003년 1월 24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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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연재소설

8월의 저편 226

강의 왕자 2

“훠이, 훠이, 안 된다. 비눗물이다. 좀 기다리라. 빨래 다 끝나면 옥수수하고 조개껍데기하고 실컷 먹여 주꾸마.”

인혜는 비눗물을 휙 내버려 닭을 쫓아내고 가칠가칠한 입술에 혀로 침을 바르고 밀양아리랑을 불렀다. 노랫소리가 바람에 날려 자기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과 혀와 입술은 노래하고 있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빨래를 너는 손에 탄력이 붙었을 때, 바람 속에서 우당탕 우당탕탕 발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큰일났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인혜는 아기 저고리를 손에 쥔 채 가게로 달려갔다.

“우짠 일입니까?”

인혜는 용하의 목을 들어올려 자기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얼굴, 목, 팔에 빨간 물집이 돋아 있다. 예삿일이 아니다, 풍진이면 나한테도 옮길 거고, 아기한테도 옮긴다.

“아이고!”

“어디 불편하십니까?”

용하는 바닥에 팔꿈치를 대고 목에 힘을 주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술을 움직였지만, 힘이 모자라 인혜의 허벅지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눈과 코와 입을 잔뜩 찌푸리고 숨을 헉헉거렸다.

인혜는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다.

“열이 굉장합니다.”

고열 때문에 온 얼굴이 땀으로 번쩍이고 있다. 인혜는 손에 쥐고 있는 아기 저고리로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우근이가 유리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휭휭 불어드는 찬바람에 용하의 머리칼이 마구 헝클어졌다. 어쩌지, 미옥이 아버지는 달리고 있고, 어머님은 미옥이 돌보고 있고, 내가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 선생님한테 보여야겠네예. 우근 도련님, 건넛집 의사 선생님 좀 빨리 불러와야겠심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하이소.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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