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왼쪽 다리가 영 안 좋네 무릎이 아프다 파아 파아 파아 다리 있는 데까지 걸어서 가자 좀 천천히 가자 파아 파아 천천히 걸으면서 얘기하자 좀 더 가까이 와라 파아 파아 파아 파아 두 주일 전에 징병제 실시된 건 알고 있제? 규정은 스무 살 이상의 남자라고 돼 있지만도 전황이 불리해지면 삼십대든 십대든 전선으로 끌려 나갈 게 뻔하다 파아 파아 파아 일본으로 도망 안 갈라나 형은 메이지 신궁 대회하고 역전 대회 때 몇 번이나 일본에 가봤기 때문에 지리에 훤하다 그라고 니하고 내는 일본말도 완벽하게 한다 아이가 파아 파아 일본에 가서 고마 일본 사람이 돼 버리는 기다.”
“…내는 일본에는 안 간다.”
“와?”
“내는 일본에는 가본 적도 없다 아이가…아마도 일본에는 안 갈 기다 그런 기분이 든다.”
“파아 파아 파아 파아 와?”
“형은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땅을 달리는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
“못하제.”
“그거하고 같다. 상상이 안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안 해야 되는 거 아니겠나.”
“누가 그라드노.”
“누가 됐든 그리고 또….”
“파아 파아 뭐꼬.”
“내는 여기서, 이 나라에서, 조선에서 할 일이 있다.”
“뭘 한다 말이고. 파아 파아 파아 파아.”
“…지금은 말할 수 없다.”
“파아 파아. 내는 도망갈 기다.”
“형수하고는 의논해 봤나?”
“어데 여자는 말이 많아서 믿을 수가 없다.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아놓고서도 아무하고든 의논한다 아이가. 이런 얘기는 니한테만 하는 기다.”
“내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다. 누나가 죽고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형은 하나뿐인 내 혈육 아이가.”
“파아 파아. 내는 다리께에서 그만 끝내야겠다.”
“내는 한 바퀴 더 돌란다.”
“그래 그라거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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