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98…낙원으로(15)

끼이익, 이번에는 안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다, 하고 생각했지만 천천히 발꿈치를 들고 벌려진 다리를 오므리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몸을 구부리고 잠옷을 입혀준 사람은 언니였다. 소녀는 언니의 몸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어깨를 들먹거렸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고, 하는 소리가 튀어나오려는데, 쉿 하고 언니가 입술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 눈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지만 얼굴 전체는 고요했다. 으앙! 여자는 소녀의 두 팔을 꽉 잡고 몸을 떼어놓으며 자기 입술 앞에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울면 또 얻어맞아. 자, 좀 누워….”

둘은 꼭 껴안고 누웠다. 여자는 한쪽 팔에 소녀의 머리를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는 소녀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빨리 해!

빨리 나와!

총검으로 옆 벽을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헉 헉, 으으으으윽, 아 아 아 아

헐떡거리고 신음하는 남자와 여자의 소리….

“눈 감아.” 여자는 팔로 떨어지는 눈물을 잠옷 자락으로 닦았다.

“자, 자야 돼.” 여자는 손가락으로 소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뭐 보여?”

“…아니…아무 것도….”

“…보일 거야…보이지….”

“…아아…보인다….”

눈두덩 속 어둠에서 빛이 어지럽게 반사하면서, 쉭 쉭 쉭 쉭, 덜커덩 턱 덜커덩 턱, 소녀는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뽀-, 열차는 터널 속 어둠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삐- 활짝 열린 창문으로 검은 연기가 들어왔다. 창문이 고장 났는지 손잡이를 누르면서 위아래로 열심히 흔들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더니, 창문은 분명 열려 있는데 유리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터널만 지나면 밀양인데 왜 이렇게 슬픈 얼굴이지…뽀오오오-! 나왔다! 쉭 쉭, 쉭 쉭,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열차는 밀양강 철교를 건너기 시작하고, 소녀는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강가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쉭 쉭, 쉭, 쉭, 덜커덩 턱, 덜커덩 턱, 덜커덩….

글 유미리